[72. 3] 3월 1일을 맞이하는 사명자의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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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명이라는 것은 자기 자신을 위하여 있는 것이 아니요, 남을 위하여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명자들은 3월 1일을 맞이할 때에 자동적으로 새로운 결심을 가지게 됩니다. 왜냐하면 3월 1일은 우리 민족으로서 잊을 수 없는 날이기 때문입니다. 1919년 3월 1일에 큰 성공을 했다는 것보다도 올바른 사상을 가졌다는 것이 더 귀한 것입니다.
우리가 지금이라도 남을 살려보자는 사상으로 뭉쳐지는 일이 있다면 이것이 가장 놀라운 일입니다. 그러므로 1972년 3월 1일을 맞이할 때에 사명자들은 이 민족을 살려보겠다는 마음이 더욱 불타야 할 것입니다. 53년이 지난 이날까지 아무런 일도 성공하지 못하고 억울한 일만 이 민족이 당했다는 것은 너무나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소위 양반이라는 관념하에서 삼천리금수강산을 어린아이가 손에 들고 있던 떡을 빼앗기듯이 아무런 말 한마디 못하고 일본에게 빼앗겼던 것입니다. 어리석은 민족, 간사한 일본에게 속은 것이 분해서 아우성쳐 보았던들 억울한 것뿐입니다. 왜정 말년에 대동아전쟁이라는 이름을 가지고 한국 교회를 집어삼키고 시국을 인식하라고 하면서 신사참배를 국가 의식이라고 꾸며 국민된 의무로서 동방 요배를 하라고 이 민족들에게 강조했습니다. 침략 국가 일본 신사 참배, 동방 요배 외에 여러 가지로 침투할 때에 한국 교회는 자동적으로 두 패가 되었던 것입니다. 신사참배를 할 수 없다, 동방 요배도 할 수 없다고 할 때에 무지한 악당들에게 괴로움을 받은 그 억울한 피를 잊을 수가 있겠습니까?
그리고 해방이라는 기쁜 소식을 받고도 공산당 악정 아래서 또다시 두 패로 갈라졌습니다. 공산 기독교 연맹을 반대하는 사람들과 공산 기독교 연맹에 가입된 사람들이 대립된 것입니다. 해방 전에는 일본 기독교 연맹이라는 간판을 내걸고 참된 종들을 괴롭히던 무리들이 해방 후에는 공산 기독교 연맹이라는 간판을 내걸고 참된 종들을 괴롭혔습니다. 북한에서 싸우다가 월남한 종들이 또다시 동란을 만나 무서운 시련을 받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오늘에 와서 또다시 협상이라는 문제를 가지고 나오는 무리들이 참된 종들을 괴롭힐 때가 오고 보니, 참된 사상을 가진 사람으로서는 몸부림쳐 하나님께 호소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친일파가 애국자를 해치려고 했던 일과 일본 기독교 연맹이 참된 종들을 해치려고 했던 일과 공산 기독교 연맹이 참된 종들을 해치려고 했던 일과 같이, 협상 주의적인 사람들이 참된 종들을 해치려고 하는 것이 이제부터 본격적으로 오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나라에서 순교적인 사상을 가진 사람들의 쓰라린 고통이라는 것은 53년을 계속되고 있는 것입니다. 아무리 생각해보아도 오늘의 큰 문제는 과거보다도 더 어려운 문제라고 볼 수 있습니다. 만일 우리가 이제 와서 협상 주의로 흐르고 만다면 다시 기회가 없는 함정과 올무에 걸리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과거는 어떻게 되었든지 이제라도 끝까지 싸워야 되겠다는 마음이 간절하게 생깁니다.
이 사람은 58년이라는 세월을 세상에서 살았지만 성공적으로 해본 일은 하나도 없었고 전부가 실패한 일뿐입니다. 그러나 이제부터 나를 실패하지 않도록 하나님께서 역사해주실 것을 확신하는 바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로 분명히 나를 시련 가운데서 떨어지지 않고 자라나도록 길러주셨기 때문입니다. 어떤 농부가 애써서 곡식을 길러놓고 열매도 맺기 전에 베어버린다는 것은 정신이 없는 행동일 것입니다. 우리 하나님은 완전한 신이시니 나를 길러주시고 열매 없이 찍어버릴 수는 없습니다. 그러므로 나는 승리할 것을 확실히 믿고 3월 1일부터 싸워나갈 수밖에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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