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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야 기독교 종말의 변론 - 사41:1~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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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하나님께서 완전한 변론이 없이 완전한 역사를 일으킬 수 없는 것이니, 완전 변론이 어디서부터 나온다는 것을 가르친 것이 본서에 기록되어 있다.

  이날까지 기독교 역사라는 것은 성경대로 이루어진 일을 증거하는 데는 온 세계 인류가 다 육체는 풀같이 쓰러지지만 그 영을 구원해준다는 것을 목적한 것이다(벧전1:5~9). 모든 사도들은 말세에 나타난 영혼 구원을 목적하고 증거한 것이 기독교 중생의 도리라는 것이다. 이것은 누구든지 회개하고 주 예수를 믿으면 다 죄 사함을 받고 하나님의 자녀가 된다는 것이다(눅24:44~49).

  그러므로 선지서의 변론은 목적이 하나님의 자녀인 이스라엘이요, 야곱이요, 시온이지만 어떠한 자가 되어야 재앙의 날에 남은 자가 되어서 지상에서 축복을 받는다는 것을 목적 두고 가르친 것이다. 어느 선지나 동일하게 영혼 구원을 목적 두고 묵시의 말씀을 받은 것이 아니요, 진노의 재앙이 오는 날에 남은 종, 남은 백성이 지상에 평화 왕국이 올 때에 축복받을 것을 목적하고 말씀한 것이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이스라엘로 말미암아 세계 통일의 나라가 올 것을 가르치는 말씀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십자가의 도리를 이날까지 전한 것은 온 세계 인류를 피로 사서 하나님께 드리는 역사이기 때문이다(계5:9).

  이제 기독교 종말의 변론에 대해서 본문을 통하여 다음과 같이 말한다.



  1. 세계적인 변론 (1)


(사41:1) 섬들아 내 앞에 잠잠하라 민족들아 힘을 새롭게 하라 가까이 나아오라 그리하고 말하라 우리가 가까이 하여 서로 변론하자


  하나님께서 이날까지 기독교가 세계에 확장하도록 하는 동시에 과학적인 발전을 가져와서 세계를 마음대로 왕래할 수 있는 자리에 이르게 한 것은 기독교 종말의 변론을 세계적으로 하기 위한 방법이라고 본다. 만일 기독교가 세계에 확장되지 않았다면 “섬들아 내 앞에 잠잠하라 민족들아 힘을 새롭게 하라” 하는 말을 할 수가 없을 것이며, 만일 과학이 발전되어서 세계를 자유롭게 왕래하며 활동할 수가 없게 되었다면 기독교 종말의 변론자가 세계적인 역사를 할 수가 없을 것이다.

  그러므로 금일에 와서 세계 인류적인 큰 변론의 역사는 반드시 있어야 될 때가 왔다고 본다. 어느 선지나 묵시를 볼 때에 세계적인 인류가 다 들으라고 하는 말씀을 기록한 것이다. 사1:2, 24:1, 미1:2, 욜2:1, 옵1:1, 합2:2, 8, 습1:2~3, 슥12:3~4을 보면 전부가 세계적인 변론을 목적한 것이다. 이것은 세계 인류적인 심판과 세계 통일의 새로운 시대를 목적하고 말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기독교 종말의 변론 앞에서는 세계 사람이 다 그 변론으로 말미암아 심판을 받게 되고 구원을 받게 되기 때문이다.

  이사야 40장은 세례요한의 증거와 아름다운 소식을 시온에 전하는 종말의 사명자를 구분하여 말씀하셨고, 41장은 기독교 종말에 변론의 역사가 나오므로 새로운 시대가 이루어질 것을 목적하고 가르친 말씀이다.



  2. 동방에서 대표적인 사람을 일으킨다 (2)


(사41:2) 누가 동방에서 사람을 일으키며 의로 불러서 자기 발 앞에 이르게 하였느뇨 열국으로 그 앞에 굴복케 하며 그로 왕들을 치리하게 하되 그들로 그의 칼에 티끌 같게, 그의 활에 불리는 초개 같게 하매


  세계 인류가 회개하고 하나님께로 돌아오는 일을 하기 위하여 유대 광야에서부터 외치고 세계 인류를 다 통일시켜 새로운 시대를 이루기 위해서는 하나님께서 동방에서 일으키되 세계 통치권을 준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동방에서 일어나는 심판 변론의 역사로써 세계를 심판하고 구원하기 때문에 인간 죄악의 정권이 다 그 앞에서 굴복하는 일이 있게 될 것을 말했다. 하나님께서 이날까지는 세계 열왕을 다 기다리고 참으시면서 용납했지만, 심판의 변론이 동방에서 나올 때부터는 세상의 죄악의 정권을 다 없애버리는 때이므로 자동적으로 동방 사람 앞에 굴복을 당하게 되는 것이다. 사24:14이나 다 동일한 뜻이라고 보게 된다.

  이 동방이라는 것은 서아시아를 뜻한 것이 아니고 동아시아를 뜻한 것이다. 왜냐하면 서아시아에서 동방이라고 가르치되 사59:19에는 해돋는 편이라고 했고, 41:25에는 해돋는 곳이라고 했고, 단11:44에는 동북이라고 했고, 사24:16에는 땅끝에서부터 노래한다고 했고, 사41:8에는 땅끝에서부터 종을 붙든다고 했고, 42:10에는 땅끝에서부터 노래한다고 했고, 43:6에는 내 딸들을 땅끝에서부터 오게 하라고 했고, 이사야 60장에는 열방의 재물이 동방으로 들어올 것을 가르쳤다. 이것을 보면 동방 땅끝이 즉 대한민국으로 보게 된다. 왜냐하면 극동 아시아에 교회가 남아서 발전하는 것은 남한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땅에 하나님의 말씀이 새 힘 받은 종의 입술을 통하여 「아름다운 소식」이라는 월간지로 완전한 변론이 나오게 되는 것은 작은 일이라고 볼 수 없다. 지금 이 일이 작은 일 같으나 앞으로 세계 열방을 깨우칠 진리 운동이 되리라는 것은 너무나 똑똑한 사실이다. 기독교 역사상 많은 신학자의 변론이 있지만 그것은 바울서신에 의하여 부분적인 변론을 말한 것뿐이다. 이제 기독교가 새로운 종말의 변론이 나오지 않으면 안 될 때가 되었기 때문에 사40:9과 같이 높은 산에 올라가서 새 힘을 받되 30절~과 같이 이루어지는 역사를 현저히 받고 있다.

  이뢰자 목사가 매일 10시간씩 강의하고, 남은 시간은 월간지를 쓰게 하고, 밤마다 밤을 새워 기도하고, 음식은 아무런 영양이 있는 것은 먹지 않고 단지 채소와 한 홉에 불과한 음식으로 하루를 지내면서 사자같이 외친다는 것은 기독교 역사상 없었던 새 힘이라고 보며, 얼마든지 기독교 종말의 변론을 입으로 불러서 책자를 쓰고 있는 것도 새로운 역사라고 아니할 수 없다. 누구든지 이 변론을 듣지도 않고 그 책자를 읽어보지도 않고 함부로 이단이라고 판단한다는 것은 멸망받을 일이라고 본다. 누구든지 가까이 나아와 서로 변론해보자. 누가 동방에서 사람을 일으켰느냐 하는 것은 오늘의 이 역사라고 본다.

  지금 이뢰자 목사의 입에 완전한 변론이 임한 증거는 현재의 서책으로 증명된다. 언제나 대중 앞에서 강단에서 입으로 불러 변론의 서책을 내고 있다. 이 목사는 세상 학적으로 학교에 다닌 일도 없고 고려 신학에 2년밖에는 거친 일이 없다. 순수한 노동자요, 농민이요, 아버지를 잃은 유복자로 세상에 나서 서글픈 곡산이란 대각산 기슭에 자리잡고 있는 동네에서 자라난 사람이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피난민의 한 사람으로 지나는 부산 영도 빈민굴에서 남루한 옷을 입고 빈민을 봉사하던 사람에게 여호와의 말씀이 임해서 그 종을 통하여 어느 종이나 다 만족한 수도를 받게 된 것은 하나님이 일으킨 일이 아닐 수 없다. 누구든지 경솔히 생각지 말고 그 입에서 나타난 「아름다운 소식」을 자세히 읽어 보라.



  3. 자유로운 권세를 준다 (3~4)


(사41:3) 그가 그들을 쫓아서 그 발로 가 보지 못한 길을 안전히 지났나니

(사41:4) 이 일을 누가 행하였느냐 누가 이루었느냐 누가 태초부터 만대를 명정하였느냐 나 여호와라 태초에도 나요 나중 있을 자에게도 내가 곧 그니라

(사41:5) 섬들이 보고 두려워하며 땅 끝이 무서워 떨며 함께 모여 와서

(사41:6) 각기 이웃을 도우며 그 형제에게 이르기를 너는 담대하라 하고

(사41:7) 목공은 금장색을 장려하며 마치로 고르게 하는 자는 메질군을 장려하며 가로되 땜이 잘 된다 하며 못을 단단히 박아 우상으로 흔들리지 않게 하는도다


  동방에서 일으킨 사람은 어느 곳에나 원수의 나라라도 마음대로 들어가서 복음을 전할 수 있고 그 종 앞에는 누구나 다 떨 수밖에 없는 일이 온다는 것이다. 이것은 여호와께서 진노의 날에 원수를 무찌르고 나가서 원수의 손에 사로잡힌 양 떼를 해방시키는 역사를 하기 위한 것이다.

  바벨론의 포로가 되었던 이스라엘을 고레스를 통하여 해방을 주듯이 앞으로 동방의 역사가 일어나므로 바벨론은 완전히 망하게 되고 새로운 시대를 이루게 되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원수를 갚는 심판의 다림줄의 변론을 받은 종이니만큼 그 말씀대로 권세 있게 들어 쓰기 때문에 모든 인간 세력이 그 앞에서 굴복을 하게 될 것이다.

  우리가 알 것은 하나님께서는 언제나 멸시받고 천대를 받고 무시를 당하던 사람에게 묵시를 보여준 것은 종말에 동방 땅끝 가련하고 빈핍한 백성 중에서 하나님의 사람을 일으켜 원수를 승리하게 하므로 새로운 시대를 가르친 것이다. 아무리 우상적인 세력이 합심 단결해서 일어난다 하여도 동방 역사는 반드시 원수를 이기고 새 시대를 이룰 것을 가르쳤다(6~7).



  결  론


  하나님께서 마지막의 변론을 할 사람을 동방에서 일으키는 것은 하나님은 셈의 하나님이니 묵시를 보여줄 적에도 셈의 장막에 보여주었고 그 묵시의 말씀을 완전히 세계적인 심판의 변론으로 말해서 열왕이 굴복케 하는 것도 셈의 장막에서 나오되 동방 땅끝이라고 가르친 것이다.



70년 11월호 <설교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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