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od News

아름다운소식

구약설교

아름다운 소식을 예루살렘에 전하는 자여 너는 힘써 소리를 높이라

창세기 열매를 먹고 바로 일할 사명 - 창1:27~29, 2:15~19 -

페이지 정보

본문

  하나님께서 천지를 창조하실 때에 열매를 맺는 나무를 만드시고 그 열매를 먹고 일을 하라는 사명을 당신의 형상대로 지은 사람에게 맡기셨다. 하나님께서 이렇게 하신 것은 사람이 바로 행하므로 당신의 뜻을 이루는 동시에 당신의 가장 기뻐하는 소원을 이루려고 하신 것이다. 조물주 하나님의 소원이라는 것은 당신의 형상대로 지음을 받은 사람이 길이길이 복을 누리는 것이며, 당신과 동거동락하는 사람들을 많이 나게 하여서 그들을 통하여 영광을 받기도 하시며 당신의 영광을 그들에게 주기도 하시는 것이다.

  이제 열매를 먹고 바로 일할 사명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1.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나라를 이루어야 함 (1:27~29)


(창1:27) 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

(창1:28)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하시니라

(창1:29) 하나님이 가라사대 내가 온 지면의 씨 맺는 모든 채소와 씨 가진 열매 맺는 모든 나무를 너희에게 주노니 너희 식물이 되리라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이상적인 나라와 사회를 이루는 것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을 받은 사람이 마땅히 행하여야 할 직분이며, 큰 축복을 받을 일이 된다. 인류 역사상 많은 나라가 있었지만 이상적인 국가와 사회를 이루지 못한 것은 열매를 먹으면서도 사람들이 자기가 해야 할 사명을 바로 하지 못한 원인이다.

  모든 식물은 사람에게 먹을 수 있는 양식을 공급하고 있건마는 오늘날 사람들은 그 열매를 먹고 자기의 사명을 하지 못하고, 또 그 열매를 먹기 위하여 땀을 흘리는 일밖에는 할 줄을 모르고 있다. 그러므로 열매를 먹고 바로 일할 사람이 열매를 먹기 위하여 노력하다가 죽고 만다는 것은 열매를 먹고 바로 일할 사람이 되지 못한 수치를 드러내는 것뿐이다.

  하나님께서 열매를 먹게 한 사람에게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정복하라, 다스리라”고 하신 것은 이상적인 사회와 나라를 이루라는 것을 말한다. 사명이라는 것은 그 사람 자체가 먼저 완전한 인격을 가지게 되면 그 인격적인 열매로서 이상적인 나라를 이룰 수 있는 것이다. 첫째 아담이 범죄하였으므로 죄의 세상이 이루어졌고, 둘째 아담 그리스도가 의를 행하셨으므로 거룩한 세상이 이루어지게 된다.

  아담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을 받았지만 그 형상대로 열매를 맺지 못하였기 때문에 첫 열매로 가인을 낳게 되어 하나님을 대적하고 의인을 죽이는 일이 있었다. 그러므로 그 씨가 땅에 편만하게 될 때에 하나님께서는 홍수 심판으로 그들을 전멸시키고 말았던 것이다. 아담이 자기가 해야 할 사명을 하지 못하였으므로 그 열매는 심판의 대상자가 되는 악한 세상을 이루었던 것이다. 하나님께서 물로 세상을 심판하셨지만 아담이 선악과를 먹은 그 질적 타락으로 말미암아 또다시 불로 살라 없애버리는 심판을 할 수밖에 없게 된 것이 바벨론 세상이다.

  이것을 본다면 한 사람이 사명을 바로 감당하지 못한 죄로 전 세계가 멸망을 받게 된 것을 알 수 있다. 그리고 그리스도 한 분이 사명을 바로 감당하신 의로 영원히 복을 누리는 나라가 이루어지는 것이다. 우리 사명이라는 것을 열매를 먹고 또 그 열매를 먹기 위하여 수고하는 것이 아니요, 열매를 먹은 사람으로서 거룩한 나라를 이루는 일과 그 나라에 들어갈 수 있는 사람을 많이 생육하는 일이라고 본다.

  거룩한 사람이 될 때에 거룩한 사람이 열매로 나타나고, 지혜로운 사람이 될 때에 지혜로운 사람이 열매로 나타나고, 사랑의 사람이 될 때에 사랑의 사람이 열매로 나타나는 것이 원칙이다. 하나님의 형상대로 이루어진 인격을 가지고 그 형상대로 이루어진 사람을 생육하고 충만케 하며 이 땅을 거룩한 사람으로 정복케 하고 다스리게 하는 것은 열매를 먹고 사는 사람이 해야 할 사명이라는 것이다.

  만일 어떤 지도자가 사람들을 지도할 때에 바로 가르치지 못하고 억지로 자기 주권을 내세우면서 사람을 노예화시킨다면 이것은 악한 행동이라고 본다. 어떤 목사가 강단에 서서 설교할 때에 그곳에 모인 모든 사람들이 다 마음이 깨끗해지고, 평화로워지고, 사랑의 불이 타게 된다면 열매를 먹고 사명을 바로 할 수 있는 인격을 가졌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어떤 목사가 강단에 서서 설교를 할 때에 오히려 그곳에 모인 사람들의 마음이 복잡해지고, 말씀이 혼선되고, 사랑이 식어지고 만다면 이 설교자는 열매를 먹고 또 그 열매를 먹기 위하여 일하는 삯꾼에 불과한 사람이라고 본다.



  2.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가정을 이루어야 함 (2:15~19)


(창2:15) 여호와 하나님이 그 사람을 이끌어 에덴 동산에 두사 그것을 다스리며 지키게 하시고

(창2:16) 여호와 하나님이 그 사람에게 명하여 가라사대 동산 각종 나무의 실과는 네가 임의로 먹되

(창2:17)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정녕 죽으리라 하시니라

(창2:18) 여호와 하나님이 가라사대 사람의 독처하는 것이 좋지 못하니 내가 그를 위하여 돕는 배필을 지으리라 하시니라

(창2:19) 여호와 하나님이 흙으로 각종 들짐승과 공중의 각종 새를 지으시고 아담이 어떻게 이름을 짓나 보시려고 그것들을 그에게로 이끌어 이르시니 아담이 각 생물을 일컫는 바가 곧 그 이름이라


  하나님께서는 사명자에게 돕는 사람이 있는 것을 원하신다. 하나님께서는 홀로 있는 것을 원치 않으시고, 홀로 일하는 것을 원치 않으시고, 당신과 의합된 사람을 택해서 쓰시므로 당신도 영광을 받으시고 의합된 사람에게 영광을 주기도 하시는 것이다. 이와 같이 사명을 맡은 자에게도 돕는 짝을 주어서 사명자가 영광을 누리는 동시에 돕는 자도 같이 영광을 누리게 하신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당신과 사명자가 일체가 되는 것같이, 사명자와 일체가 되는 사람이 있어서 한 단체를 이루는 것을 기뻐하시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천지를 창조하시고 사람을 지을 때에 아담이 홀로 있는 것을 기뻐하지 않으시고 돕는 배필을 지어 함께 살게 하셨다. 이것은 부부에 관한 것만을 뜻한 것이 아니요, 거룩한 나라를 이루기 위한 사명자에게 대한 것을 뜻한 것이다.

  지금 이 세상의 부부라는 것은 거룩한 씨를 내는 것보다도 악한 씨를 많이 내고 있다고 본다. 왜냐하면 아담 하와가 질적 타락이 되었으므로 그 피를 받은 부부는 타락한 사람을 생육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바울은 가정의 부부 생활도 예수님은 신랑이요 우리는 신부가 된 것처럼 되어야 한다는 것을 역설했던 것이다. 지금 아무리 큰 사명을 가진 자라도 그를 돕는 사람이 없다면 그 사명을 도저히 감당할 수가 없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므로 왕권 반열이 이루어지는 것은 큰 사명을 맡은 자와 그 사명을 돕던 자로 되는 것이다. 이와 같이 사명자의 결합으로 왕권의 영광을 누리게 하는 것이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뜻이다.

  가정이라는 것은 사명을 위한 것이다. 그러므로 교회라는 것은 사명을 위한 가정과 같이 되어야 한다. 아담이 “정녕 죽으리라” 하는 법을 받았는 데도 불구하고 하와가 “죽을까 하노라” 하는 말을 했다는 것은 돕는 사명자의 탈선된 말이라고 본다. 그리고 “정녕 죽으리라” 하는 법을 받은 사명자를 돕는 자가 “죽지 않는다”는 말을 따라갔다는 것은 사명자를 돕는 일이 아니요, 오히려 대적이 되는 일이므로 세상을 망치는 가정을 이루었던 것이다.

  우리가 열매를 먹고 사명을 바로 하는 사람이 되려면 하나님의 말씀을 받은 대표적인 종을 돕기 위해서 그가 받은 말씀의 법을 엄중히 알고 그 말씀대로 싸워야 할 것이다. 대표적인 종이 받은 말씀의 법대로 싸우는 일에 돕는 사람이 되어야만 사명을 바로 할 수 있는 종이 되며, 가정적인 단체를 이룰 수 있다.



  결  론


  하나님께서 이 땅 위에 자동적으로 열매를 맺는 나무를 만드시고 그 열매를 마음대로 먹을 수 있도록 사람에게 허락하셨다. 이 열매를 먹는 사람으로서 사명을 바로 할 때에 생명과를 먹고 생명수를 마시고 영생할 몸이 되어 세세 왕권을 받아가지고 영광을 길이길이 누리게 하는 것이 하나님의 소원인 것이다.



72년 4월호 <설교편>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