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 미혹의 말이 무엇인가 주의할 일 - 창3:1~5, 마4:1~1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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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께서 언제나 대표적인 사람에게 간교한 마귀로 미혹의 말을 하도록 허락한 이유가 무엇인지를 알아야 할 것이다. 첫째는 하나님의 말씀만 따르는 자가 되느냐를 시험하는 거요, 둘째는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고 변론을 바로 해서 이기나 보자는 것이요, 셋째는 하나님만 존경하는 생활이 있나 보자는 것이다. 그러므로 첫째 아담 하와에게 미혹의 말이 왔고 둘째 아담 예수에게 미혹의 말이 왔다. 미혹의 말이라는 것은 그때에 그 인격을 따라서 오는 것이다.
이제 미혹의 말이 오는 그 환경과 입장을 따라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1. 아담 하와에게 오는 미혹의 말 (창3:1~5)
(창3:1) 여호와 하나님의 지으신 들짐승 중에 뱀이 가장 간교하더라 뱀이 여자에게 물어 가로되 하나님이 참으로 너희더러 동산 모든 나무의 실과를 먹지 말라 하시더냐
(창3:2) 여자가 뱀에게 말하되 동산 나무의 실과를 우리가 먹을 수 있으나
(창3:3) 동산 중앙에 있는 나무의 실과는 하나님의 말씀에 너희는 먹지도 말고 만지지도 말라 너희가 죽을까 하노라 하셨느니라
(창3:4) 뱀이 여자에게 이르되 너희가 결코 죽지 아니하리라
(창3:5) 너희가 그것을 먹는 날에는 너희 눈이 밝아 하나님과 같이 되어 선악을 알 줄을 하나님이 아심이니라
미혹의 말이라는 것은 마귀로부터 오는 것인데 인격과 환경에 따라서 미혹을 받도록금 하는 말이다. 이제 미혹의 말이 어떠한 환경과 인격에 따라서 오느냐에 대하여 본문을 통하여 알 수 있다.
1) 하나님 말씀을 물어보는 말로 오는 것인데, 여기에 대하여 완전한 답변을 못할 인격을 가진 자에게 오는 것이다.
그러므로 하와와 같이 말씀을 옳게 대답을 못하는 자가 되면 대답을 바로 못하는 시간에 벌써 마귀에게 지는 단계에 들어가는 것이다. 하와가 마귀의 물어보는 말에 대답을 하나님 말씀에서 정확히 대답을 못하는 인격이었다. ‘정녕 죽으리라’는 말씀을 ‘죽을까’라는 말로 대답이 나올 때에 하와는 미혹을 받게 된 것이다.
지금도 마귀는 말씀 무장이 못된 자에게 답변을 바로 못할 줄 알 때는 성경을 물어보는 말로 미혹을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마귀의 미혹의 말을 이기려면 물어보는 말에 정확히 대답할 무장이 있어야 한다. 금일에 소위 목자라는 사람들이 물어보는 말에 하나님 말씀으로 정확히 대답을 못한다면 교회를 망치는 목자가 될 것이다(창3:1~3).
2) 하나님의 말씀은 그대로 볼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오늘도 미혹자 말은 하나님의 말씀을 그대로 볼 것이 아니고 한 상징에 불과한 것이라는 말이 에덴동산에서 하와에게 결코 죽지 아니한다는 말이나 같다. 하나님은 사랑이신데 그 말씀은 언제나 사랑으로 해석해야 된다는 것이 미혹의 말이다.
우리는 공의를 떠난 사랑이 있을 수 없다는 데서 말씀은 공의의 법이라는 것을 믿고 말씀 그대로 행하시는 하나님의 법인 줄 알고 마귀와 대적하는 것이 있어야 된다. 그렇지 않으면 마귀 미혹은 얼마든지 말씀을 변경시키려는 것으로 들어오기 때문이다(창3:4).
3) 하나님의 사랑을 의심하게 하는 말이다.
하나님은 사람을 자기의 형상대로 이루어주겠다는 것이 하나님의 사랑인데 마귀는 이것을 의심나도록 하는 말이다. 선악과를 먹으면 하나님같이 될까 봐 먹지 말라 한다는 것은 하나님의 사랑을 의심하게 만드는 말이다. 그러므로 지금도 마귀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완전케 해주고자 하는 사랑을 의심나게 하는 말을 하나님의 역사를 자기에게 유익한 것으로 생각이 나지 않고 오히려 불리하게 될 것으로 생각이 나도록금 하는 것이니, 언제나 하나님은 우리에게 유익하도록 해주시는 것을 믿고 담대히 나가야 할 것이다(창3:5).
2. 둘째 아담 예수에게 오는 미혹의 말 (마4:1~11)
(마4:1) 그 때에 예수께서 성령에게 이끌리어 마귀에게 시험을 받으러 광야로 가사
(마4:2) 사십 일을 밤낮으로 금식하신 후에 주리신지라
(마4:3) 시험하는 자가 예수께 나아와서 가로되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명하여 이 돌들이 떡덩이가 되게 하라
(마4:4)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기록되었으되 사람이 떡으로만 살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 하였느니라 하시니
(마4:5) 이에 마귀가 예수를 거룩한 성으로 데려다가 성전 꼭대기에 세우고
(마4:6) 가로되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뛰어내리라 기록하였으되 저가 너를 위하여 그 사자들을 명하시리니 저희가 손으로 너를 받들어 발이 돌에 부딪히지 않게 하리로다 하였느니라
(마4:7) 예수께서 이르시되 또 기록되었으되 주 너의 하나님을 시험치 말라 하였느니라 하신대
(마4:8) 마귀가 또 그를 데리고 지극히 높은 산으로 가서 천하 만국과 그 영광을 보여
(마4:9) 가로되 만일 내게 엎드려 경배하면 이 모든 것을 네게 주리라
(마4:10) 이에 예수께서 말씀하시되 사단아 물러가라 기록되었으되 주 너의 하나님께 경배하고 다만 그를 섬기라 하였느니라
(마4:11) 이에 마귀는 예수를 떠나고 천사들이 나아와서 수종드니라
하나님께서 에덴동산의 아담 하와를 마귀의 말로 미혹해보듯이 둘째 아담 예수님도 하나님께서 마귀의 말로 미혹을 시켜본 것이다. 마귀는 예수님을 미혹해보는 말을 할 때에 에덴동산에 있는 아담 하와에게 말하는 방법과는 다르게 왔던 것이다. 왜냐하면 예수님은 성신을 받고 성신의 인도하에서 미혹을 하는 말을 할 때에 성신 받은 사람으로서 미혹받을 말을 했던 것이다.
1) 돌로 떡덩이가 되게 하라는 이적이다. (3~4)
이것은 성신 받은 사람이 이적을 중심한다는 것은 미혹받는 길이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이적이라는 것은 말씀으로 양 떼를 살리기 위한 목적인데 말씀으로 살리지 않고 자기를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것을 나타내기 위한 이적이라는 것은 곁길이라고 볼 수 있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도 이적을 행했다 하여도 진리로써 우리를 살리는 일이 없다면 그 이적은 필요가 없는 일이요, 금일에 아무리 이적을 행하는 종이 있다 하여도 말씀으로 양 떼를 살리는 역사가 없다면 그 이적은 오히려 미혹이 올 수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주님께서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산다’는 것으로 이겼던 것이다. 금일에 아무리 이적이 많아 육체가 배불리 먹을 수 있는 일이 있다 하여도 말씀으로 그 생명을 살려주는 일이 아니라면 거짓 선지의 미혹이 될 것이다.
2)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높은 데서 뛰어내리면 보호해준다는 것이다. (5~7)
성신 받은 사람이 하나님의 신이 함께한다고 해서 함부로 위험한 일을 저지르면서 보호할 줄 믿는다는 것은 오히려 죄가 된다. 왜냐하면 사람이 할 일을 하지 않고 하나님의 보호를 믿는다는 것은 오히려 하나님을 이용하려는 생각이 되는 것이니 마치 마술자가 필요 없이 마술을 행하듯이 아무 필요 없는 일에 하나님의 신의 역사를 이용한다는 것은 하나님이 노여워할 일이다.
예를 든다면 군대가 전쟁을 할 때에 자기가 주의치 않고 싸움에 실패하면서 상부의 보호만 믿고 있다는 것은 망령된 일이라고 보게 된다. 우리가 하나님의 일을 할 때에 사람이 주의할 일을 주의하고, 피할 일을 피하고, 싸울 일을 싸우면서 그 밖에 내가 못 할 일을 하나님의 역사로 된다는 것을 믿고 나가지 않고 공연히 필요 없는 일에 하나님이 도와주시리라고 하면서 일을 저지르려고 한다면 오히려 미혹을 받는 길이 될 것이다.
3) 타협적으로 나가자는 말이다. (8~11)
마귀는 언제나 싸우지 말고 자기 말만 들으면 얼마든지 좋게 해준다는 것이다. 금일에 공산당이 기독교를 향하여 공산 사상을 지지만 해준다면 얼마든지 자유롭게 활동할 수 있는 자유를 준다는 것이니 이 말이 마귀의 말이다.
하나님의 아들이 세상에 온 것은 세상에서 마귀의 일을 멸하려고 온 것인데 마귀 앞에 타협을 한다면 벌써 목적을 상실한 것이다. 재림의 주가 오시는 것은 붉은 마귀의 일을 없이하려는 것인데 마귀의 일을 없이하기 위한 예수를 믿는 사람들이 마귀의 일에 머리를 숙인다는 것은 그 시간에 진 것이다.
그리스도께서 초림의 주로 오신 것은 타협할 수가 없이 죄를 진 인간들을 향하여 대신 죽으러 온 것이요, 재림의 주로 오시는 것은 이 세상에서 마귀의 일을 몽땅 없애려 오시는 것이니 누구든지 마귀의 일에 타협하자는 것은 미혹의 말로 알아야 할 것이다.
결 론
기독교의 사명은 마귀에게 미혹받은 세상을 깨닫게 해서 구원해주자는 것이니 마귀의 미혹의 말이 무엇인지를 모른다면 기독 신자로서 허공을 치는 바람잡이 생활을 하게 될 것이다.
71년 1월호 <설교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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