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 기운이 진한 야곱과 새 힘을 받은 야곱 - 창49:33, 사40:27~3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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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언약을 세울 때에 “네 씨로 말미암아 모든 족속이 복을 받으리라”고 하셨다. 그리고 시련 끝에 아브라함에게 이삭을 주셨던 것이다. 이삭이 에서와 야곱을 낳게 되었는데, 하나님께서 모태로부터 에서는 택하지 않고 야곱을 택하셨다. 그러므로 야곱이 이스라엘 왕국을 이루어 거기서부터 참된 하나님의 말씀이 나타났는데, 이것이 세계를 구원하는 복음이 된 것이다.
모태로부터 택함받은 야곱이 이스라엘 왕국을 이룬 것은 앞으로 하나님의 택함을 받은 자들로 말미암아 지상 왕국이 이루어질 것을 뜻했다. 그러므로 오바댜 선지가 인간 종말에 심판을 받을 자는 에서요, 구원을 받을 자는 야곱이라는 것으로 묵시를 보았던 것이다. 아무리 아브라함의 씨지만 택하지 않은 자는 버림을 당하게 되고, 택함을 입은 자만으로 영원한 왕국이 이루어진다는 것을 증거로 보여준 것이다.
이제 기운이 진한 야곱과 새 힘을 받은 야곱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말한다.
1. 기운이 진한 야곱 (창49:33)
(창49:33) 야곱이 아들에게 명하기를 마치고 그 발을 침상에 거두고 기운이 진하여 그 열조에게로 돌아갔더라
야곱은 모태로부터 택함을 입었으므로 하나님의 축복을 위하여 싸우는 생활을 하게 되었다. 이것은 어떠한 도덕과 의식을 따라서 된 것이 아니요, 모든 것을 초월해서 싸운 것이다.
야곱이 자기 형인 에서에게 팥죽 한 그릇에 장자의 기업을 사겠다는 것은 인간 도덕으로는 너무나 어긋난 일이다. 왜냐하면 도덕적으로는 용납할 수가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배고픈 형을 앞에 놓고 장자의 기업을 팔면 팥죽을 준다는 것은 사람이 볼 때에 너무나 부도덕한 일이다. 그러나 이것은 어떠한 명예심보다도 장자의 축복을 갈망하는 마음에서 나온 말이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네 씨로 말미암아 천하의 모든 족속이 복을 받는다”고 하신 말씀을 생각할 때에 야곱은 장자가 아니므로 그 사명을 못 한다는 것을 항상 분하게 여겼던 것이다. 에서는 자기로 말미암아 천하의 모든 족속이 복을 받게 된다는 것을 경홀히 생각을 했고, 야곱은 그것이 가장 큰 축복이며 가장 큰일로 생각했다. 그러므로 야곱은 인간이 볼 때에 도덕을 떠난 말을 하였지만, 가장 불타는 신앙심을 가졌다고 본다.
그리고 형이 받을 축복을 자기가 받겠다고 어린 양의 가죽을 몸에 두르고 눈이 어두운 이삭 앞에 갔다는 것은 아버지를 속이는 행동이다. 자기 형인 에서가 털이 많으므로 털이 없는 자기 몸에 어린 양의 가죽을 둘러 아버지를 속였던 것이다. 이것은 인간이 볼 때에 못된 자식의 행동 같지만, 에서가 장자의 기업을 야곱에게 판다고 약속을 했기 때문에 아버지를 속인 것이 아니요, 축복을 받기 위하여 비밀을 지킨 것이다.
한번 하나님 앞에 약속한 것은 비밀을 지켜서라도 그 일을 진행해야만 된다. 야곱이 하나님 앞에 한번 약속한 말을 그대로 진행할 때에 형에게 쫓겨나서 도망을 가게 되었지만, 하나님께서 야곱에게 나타나셔서 “네 자손이 땅의 티끌같이 되어서 동서 남북에 편만할찌며 땅의 모든 족속이 너와 네 자손을 인하여 복을 얻으리라”고 말씀하셨다(창28:14). 에서는 인간 앞에는 야곱보다도 이해가 많고 활발스러운 것 같지만, 하나님 앞에는 큰 과오를 범하게 되었다. 첫째는, 장자의 기업을 야곱에게 판다고 맹세한 일이요, 둘째는, 그 맹세대로 진행을 하는 야곱을 죽이고자 한 일이다. 하나님의 종이 되려면 하나님 앞에 한번 맹세한 일은 그대로 진행해야만 되는 것이다.
그리고 야곱은 축복을 받기 위해서 혼혈을 하지 않으려고 14년 동안이나 라반의 집에서 봉사한 일이 있었다. 아내를 얻기 위하여 14년간 아무런 삯을 받지 않고 일해 준다는 것은 인간이 볼 때에 너무나 무가치한 생활이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볼 때에 이것이 인정을 받게 되는 생활이 된 것은 축복을 받기 위해서 수고한 일이 되기 때문이다. 아무리 헛수고 같으나 축복을 받으면 된다는 것이 야곱의 마음이다.
그러므로 열두 지파의 조상이 야곱의 몸에서 탄생되었다. 이것은 예언적인 역사가 된다. 왜냐하면 야곱의 몸에서 난 씨가 이스라엘 왕국을 이루었지만,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완전 승리를 하시고 부활 승천하신 후에 성신이 강림할 때에는 이스라엘 사람이나 이방 사람이나 꼭 같이 임하였기 때문이다. 이스라엘과 이방과에 차별이 없이 성신이 역사한 것은 야곱에게 하나님께서 언약하신 말씀대로 모든 족속이 복을 받게 하기 위한 것이다. 성신이 오신 목적은 이스라엘 사람을 위한 것이 아니요, 세계 사람들 중에서 참된 영적 이스라엘을 이루기 위한 것이다.
그러므로 야곱은 열두 아들에게 축복의 말을 하고는 기운이 진하여 지면서 세상을 떠나고, 그 몸은 흙으로 돌아갔다. 그러나 오늘날 기독교는 흙으로 돌아가는 야곱이 될 때가 아니다. 흙으로 돌아가지 않는 야곱이 되어야만 야곱에게 약속하신 하나님의 말씀대로 지상 왕국을 이루게 될 것이다.
2. 새 힘을 받은 야곱 (사40:27~31)
(사40:27) 야곱아 네가 어찌하여 말하며 이스라엘아 네가 어찌하여 이르기를 내 사정은 여호와께 숨겨졌으며 원통한 것은 내 하나님에게서 수리하심을 받지 못한다 하느냐
(사40:28) 너는 알지 못하였느냐 듣지 못하였느냐 영원하신 하나님 여호와, 땅 끝까지 창조하신 자는 피곤치 아니하시며 곤비치 아니하시며 명철이 한이 없으시며
(사40:29) 피곤한 자에게는 능력을 주시며 무능한 자에게는 힘을 더하시나니
(사40:30) 소년이라도 피곤하며 곤비하며 장정이라도 넘어지며 자빠지되
(사40:31) 오직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는 새 힘을 얻으리니 독수리의 날개치며 올라감 같을 것이요 달음박질하여도 곤비치 아니하겠고 걸어가도 피곤치 아니하리로다
기독교의 이날까지 역사는 야곱과 같이 기운이 진하여 지면서 몸은 흙으로 돌아가고, 영혼은 하늘나라에 가는 것이다(마8:11). 오늘날 온 세계만방에 교회가 확장된 것은 주님께서 “동서로부터 많은 사람이 아브라함과 이삭과 함께 천국에 앉으리라” 하는 말씀이 이루어지는 천국 복음 운동이다. 이것은 이방의 빛이 되는 역사이다. 예수님이 세상에 오시기 전에는 이방 사람은 천국에 갈 수가 없었는데, 십자가의 복음으로 말미암아 누구든지 예수만 믿으면 천국에 가게 된 것은 온 천하의 민족들에게 생명의 빛이 되는 역사라고 본다.
그러나 야곱에게 세운 언약대로 모든 민족이 복을 받게 된다는 것은 이스라엘 왕국에서 선지들이 묵시를 받은 말씀대로 각 나라의 남은 자가 새 시대에 들어온다는 것과 같은 말씀이다. 다시 말하면, 야곱의 왕국이 지상에 이루어지는 것은 모든 족속이 하나같이 이 땅에서 축복을 받을 것을 가르친 것이다.
사람이 기운이 진하여 지면서 그 몸이 흙으로 돌아가는 죽음을 가지게 된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지 못한 죗값으로 온 것이다. 그러나 새 힘을 받은 야곱이라는 것은 아무리 원통하고 딱한 사정을 만났다 하더라도 하나님만 바라보고 나가는 사람에게 하나님께서 인정을 하시고 새 힘을 주셨다. 그러므로 새 힘을 받는 야곱은 기운이 진하여 흙으로 돌아가는 몸이 되지 않고, 피곤이 없고 쓰러지지 않는 몸으로 완전 승리를 이루어 지상 왕국을 이루는 열매를 맺는 사람이 되는 것이다. 오늘날 우리 기독교는 새 힘을 받는 야곱이 되는 인격으로 들어가야만 할 때가 왔다고 본다.
나는 여기에서 부득불 간증을 할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새 힘이라는 것은 체험한 자 외에는 무엇인지 알 수가 없기 때문이다. 나도 과거에는 새 힘이라는 것을 열심이 나는 정도로 알았던 것이다. 그러나 지금으로부터 4년 전에 하나님께로부터 새 힘을 받으라는 명령이 내리는 것이었다. 그러므로 나는 어떻게 하여야 새 힘을 받게 되느냐 하는 것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때에 하나님께서 “너는 아무리 원통한 일을 당하고 딱한 사정을 만난다 해도 천지를 창조한 여호와만 바라보라 그러면 새 힘을 받으리라” 하시는 것이었다. 그때부터 나는 조물주 하나님만 바라보는 묵상을 하기 시작하였다.
1967년 8월 15일 오후 3시에 새 힘이 나리는 것을 체험하게 되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이 새 힘이 몸에 부딪히는 대로 변화가 생기는 것이었다. 4년 동안이나 계속해서 새 힘을 받고 볼 때에 몸이 완전히 변해진 증거가 확실하며, 밤낮으로 쉬지 않고 일하여도 힘들지 않고, 영양이 많이 있는 음식을 먹지 않아도 점점 더 강건해지는 것을 현저히 체험하고 있다. 심지어 육류나 생선이나 우유나 계란까지도 사용치 않고, 밥 한 숟갈 정도와 채소와 과일을 먹을 때에 몸은 명랑해지고 상쾌해지는 것이다. 그러므로 매일 10시간씩 강단에 서게 되고, 남은 시간은 「아름다운 소식」의 월간지를 쓰고, 주일은 서울 「새일중앙교회」에서 목회를 하고, 매달 마지막 일주일은 집회를 나가고 있는 데도 조금이라도 피곤을 모르고 있다.
이와 같은 것을 체험하게 된 나는 새 힘이 무엇이라는 것을 확실히 증거할 수 있다. 그러므로 이 새 힘이라는 것은 기독교 종말의 오메가 역사라고 본다. 이 새 힘을 받기까지 나가는 과정은 다음과 같다.
첫째 : 중심 성결이 되는 일이요,
둘째 : 말씀이 완전히 밝아지는 일이다.
아무리 억울한 일을 당해도 하나님을 바라보게 될 때에 새 힘을 받는 단계가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변화 성도의 인격이라는 것은 새 힘을 받음으로만 이루어지게 된다는 것이 사실이다. 기운이 진해진 야곱은 그 몸이 흙으로 돌아갔고, 새 힘을 받은 야곱은 지상에서 야곱의 왕국을 이루는 일에 완전한 승리를 보게 될 것이다.
결 론
하나님께서 예언적인 역사에는 증거만 보여주셨고, 그 예언이 이루어지는 역사에는 열매를 완전히 맺게 하시되 영적이 아니요 지상에 완전한 열매로 나타나게 하시는 것이다. 기운이 진하여진 야곱은 예언적인 이스라엘 왕국을 이루었고, 새 힘을 받은 야곱은 하나님의 비밀이 그 종 선지자들에게 전하신 복음과 같이 이루어지는 다시 예언의 역사를 하다가 죽음을 맛보지 않고 새 시대의 영광을 보게 될 것이다(계10:7, 11:15).
72년 4월호 <설교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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