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복음 택한 자의 산 믿음 - 요10:22~2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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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된 종교의 신앙이라는 것은 어떤 의식이나 법도나 사람의 기도에 따라서 있는 것이 아니다. 기독교의 산 믿음이라는 것은 오직 택한 자라야 믿어지는 것을 말한다. 사람이 하나님을 찾는 것이 산 믿음이 될 수 없고, 하나님께서 택한 자에게 선물을 주는 믿음이 산 믿음인 것이다.
예수님께서 예루살렘 성전 안에 다니실 때에 소위 하나님을 공경한다는 유대인들이 말하기를 “언제까지나 우리 마음을 의혹케 하려나이까 그리스도여든 밝히 말하시오”라고 하였다. 그때에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너희가 믿지 않는 것은 내 양이 아니기 때문이라”고 하셨다. 하나님의 아들이 하나님을 공경하는 사람들을 보고 내 양이 아니라고 하신 것을 보면 믿음이라는 것은 주님의 택한 사람이라야만 있게 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므로 기독교 신앙은 누구든지 다 가질 수 있는 것이 아니요, 택한 사람만 가지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이 산 믿음으로만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일을 할 수 있게 된다.
아무리 역사적인 예루살렘이라도 택한 사람이 심히 적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수많은 유대인들이 성전에 왕래하면서 하나님을 공경하였지만 지극히 적은 소수가 예수를 믿고 그 밖에 많은 사람들이 다 예수를 믿지 않고 훼방하다가 망한 것을 본다면 택한 양은 유대인에게만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므로 어느 나라의 사람이든지 모태로부터 택한 자가 있는데 이 자를 찾기 위하여 역사할 때에 택한 자에게 믿어지도록 하는 일을 하나님께서 하시는 것이다.
이제 택한 자의 산 믿음에 대하여 본문으로 증거한다.
1. 깨달아 듣는 일이 있다 (27상반절)
(요10:22) 예루살렘에 수전절이 이르니 때는 겨울이라
(요10:23) 예수께서 성전 안 솔로몬 행각에서 다니시니
(요10:24) 유대인들이 에워싸고 가로되 당신이 언제까지나 우리 마음을 의혹케 하려나이까 그리스도여든 밝히 말하시오 하니
(요10:25)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내가 너희에게 말하였으되 믿지 아니하는도다 내가 내 아버지의 이름으로 행하는 일들이 나를 증거하는 것이어늘
(요10:26) 너희가 내 양이 아니므로 믿지 아니하는도다
(요10:27) 내 양은 내 음성을 들으며 나는 저희를 알며 저희는 나를 따르느니라
세례요한이 유대 광야에서 외칠 때에는 많은 사람이 모여들었지만, 나사렛 예수를 가리켜 “세상 죄를 지고 가는 어린 양을 보라”고 할 때에 예수님을 따라가는 자는 심히 적었다. 그러나 택함을 받은 사람은 어린 양을 보라고 할 때에 벌써 메시야인 것을 깨달았던 것이다. 이와 같이 산 믿음이라는 것은 모든 사람들이 깨닫지 못하는 일을 듣고 깨닫는 데서부터 시작된다.
예를 든다면 아무것도 모르는 어린 양이라도 자기 목자의 음성은 잘 알아듣는 것이다. 이와 같이 택한 자가 참된 진리를 듣고 깨닫는 것은 자기 스스로가 아니요, 벌써 하나님께 속한 자이므로 그 심령이 깨달아지게 된다. 이것은 어떤 사람의 방법에서 되는 것이 아니고, 무조건 믿어지는 것이 있게 되는 것이다.
믿음이라는 것은 모든 사람들이 아무리 들어도 모르는 것을 택한 자가 깨달아 듣는 것을 말한다. 그러므로 깨달아 들리는 것은 그를 택한 하나님의 신이 역사하시는 증거이다(마13:23).
2. 따라가는 일이 있다 (27하반절)
(요10:27) 내 양은 내 음성을 들으며 나는 저희를 알며 저희는 나를 따르느니라
인생이라는 것은 따라가는 데 의하여 죽느냐 사느냐에 놓이게 되고, 망하느냐 흥하느냐 하는 문제가 결부된다. 산 믿음이라는 것은 아무리 고생스러워도 핍박이 있어도 예수님을 따라가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것은 도덕을 초월한 영적 행동이라고 본다.
인생이라는 것은 누구를 따라가든지 그 따라가는 것이 바로 그의 생활이 된다. 방랑 생활을 하는 것도 그 마음에 무엇인지 모르게 금할 수 없이 역사하는 것이 있으므로 하게 되는 것이고, 의로운 정로를 따라가는 것도 그 마음에 무엇이 역사하므로 되는 것인데, 여기에는 사상이 따르게 되는 것이다.
동물이 먹을 음식을 볼 때에 덮어놓고 먹겠다는 식욕에 끌려서 따라가는 것뿐이요, 거기에 어떠한 목적이 있어서 따라가는 것은 아닐 것이다. 그러므로 사람이 먹기 위해서 따라간다는 것은 가치가 없는 동물의 생활이요, 목적을 두고 따라가는 것은 동물계를 초월한 생활이라고 본다. 그리고 목적을 두고 따라가는 중에서도 핍박이 많고 시험이 많은 험한 길을 가신 예수님을 따라간다는 것은 택함받은 사람이 아니고는 도저히 갈 수가 없는 길이다.
그러므로 천하에 제일 적은 무리는 예수님을 따라가는 산 믿음을 가진 자라고 본다. 주님께서 “내가 다시 올 때에 믿는 자를 보겠느냐”고 말씀하신 것은 택한 자로서 산 믿음을 가진 자가 적다는 것을 가르친 말씀이다. 이스라엘 60만 대중이 하나님의 인도를 따라 나섰지만 끝까지 산 믿음을 가지고 싸워나간 사람은 여호수아와 갈렙뿐이었다.
오늘에 세계적으로 많은 사람이 예수님을 따라가는 것 같지만 산 믿음으로 끝까지 싸워 이기고 주님의 재림을 맞이할 자는 14만 4천인밖에는 없다는 것이다.
3. 붙들려 사는 일이다 (28~29)
(요10:28) 내가 저희에게 영생을 주노니 영원히 멸망치 아니할 터이요 또 저희를 내 손에서 빼앗을 자가 없느니라
(요10:29) 저희를 주신 내 아버지는 만유보다 크시매 아무도 아버지 손에서 빼앗을 수 없느니라
이 세상 사람들은 다 자기 마음대로 하지 못하고 무엇에 붙들려서 사는 생활을 한다.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치 않는 자도 무엇에 붙들려서 살기 때문이요, 죽어도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는 자도 무엇에 붙들려서 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가장 복 있는 생활은 하나님과 예수님의 손에 붙들려서 사는 것이다. 우리 자체에 아무런 활동을 할 힘과 능이 없다고 해도 하나님과 예수님의 손에 붙들리게 된다면 그 생활이야말로 과학을 초월한 생활이 된다. 왜냐하면 무소불능의 역사에 끌려서 사는 생활이기 때문이다.
오늘에 세상이 소위 문명이라는 것을 자랑하지만 이것은 과학적인 기계에 붙들린 것이다. 오늘날 세계적인 전쟁이라는 것도 과학적 원자무기가 무서워서 떠는 전쟁이므로 기계에 붙들린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택한 자의 산 믿음이라는 것은 대자연을 창조하신 하나님의 손에 붙들린 것이다. 그러므로 기계에 붙들린 과학문명으로는 이상적인 국가를 이룰 수가 없겠지만, 조물주 하나님의 손에 붙들린 자는 눈물, 전쟁, 죽음, 고통이 없는 평화의 왕국을 이루고야 말 것이다.
결 론
하나님께서 택한 자에게 산 믿음을 주어서 그 믿음으로 순종하게 하고 믿는 대로 역사해주시므로 영광을 받기도 하시고 세세 영광을 주기도 하시는 것이다.
72년 3월호 <설교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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