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복음 눈이 밝은 사람이 되자 - 마6:22~24, 7:1~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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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라는 것은 먼저 눈이 밝아야 한다는 것을 주님께서 말씀하셨다. 예루살렘 거리에 왕래하고 있는 소위 하나님을 공경한다는 거룩한 사람들이 다 눈이 어두워서 하나님의 아들이 누군지를 모르는 것이었다. 하나님을 공경한다는 성전에서도 하나님의 아들을 모르고, 바리새교라는 정통자들도 하나님의 아들을 모르고, 제사장이라는 사람들도 하나님의 아들을 몰라 이단이라고 할 때에 주님께서는 입을 열어 가르치기를 눈이 밝은 사람이 되라고 하셨다.
그러므로 가장 어리석은 사람은 눈이 어두운 종교인이라고 볼 수 있다. 죄인들은 예수를 하나님의 아들인 줄 알았는데 거룩한 사람이라고 하는 무리들이 하나님의 아들을 모르고 바알세불이라고 하며 나사렛 이단이라고 하였던 것이다.
1. 섬기는 일에 눈이 밝아야 한다 (6:22~24)
(마6:22) 눈은 몸의 등불이니 그러므로 네 눈이 성하면 온 몸이 밝을 것이요
(마6:23) 눈이 나쁘면 온 몸이 어두울 것이니 그러므로 네게 있는 빛이 어두우면 그 어두움이 얼마나 하겠느뇨
(마6:24) 한 사람이 두 주인을 섬기지 못할 것이니 혹 이를 미워하며 저를 사랑하거나 혹 이를 중히 여기며 저를 경히 여김이라 너희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지 못하느니라
하나님을 공경한다는 사람들이 물질을 따라가게 되면 눈이 어두워지는 것이요, 물질을 바로 사용하게 되면 눈이 밝은 사람이 되는 것이다. 아무리 하나님을 공경한다 하여도 보물을 하늘에 쌓아두는 생활이 없다면 모든 것은 다 허사가 되고 만다. 하나님께서 천지만물을 창조하셔서 그 만물을 사람에게 주신 것은 그 물질을 섬기라고 준 것이 아니요, 물질을 바로 사용하되 현 세상을 위하여 쓰지 말고 천국을 위하여 쓰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가장 눈이 밝은 자는 날마다 사는 생활에서 보물을 하늘에 쌓아두는 생활을 하는 자이다.
바리새교인들은 말로는 정통을 부르짖으면서 돈을 가지고 사람을 사기도 하고 이용하기도 하는 일을 했다. 이것은 멸망의 자식들이 하는 짓이라고 본다. 우리는 물질을 섬길 때에 멸망이요, 물질을 바로 사용할 적에 축복인 것을 알아야 한다. 이제 물질을 바로 사용하는 사람에게 오는 축복을 다음과 같이 말할 수 있다.
첫째 : 하늘에 보화가 있게 된다.
둘째 : 땅 위에 축복이 있게 된다.
셋째 : 항상 주의 축복 속에서 기쁨이 있게 된다.
거짓 선지라는 것은 자기에게 돈을 주면 기뻐하고 돈을 주지 않으면 노여워하는 것이요, 참된 선지라는 것은 돈을 따라 움직이지 않고 진리를 위하여 물질을 희생하고 몸을 희생하고 전 생활을 바치는 것이다. 삯을 바라고 진리를 가르친다는 것은 진리를 이용하는 자요, 진리를 위하여 목숨을 바치고 나가는 자는 말씀의 용사이다.
말씀을 전하기 위하여 집이나 전토나 형제나 부모나 모든 것을 버리는 자는 예수님의 제자가 될 것이로되 그렇지 않은 자는 자동적으로 삯꾼이 될 것이다. 초림의 주가 오실 때에 삯을 위하여 교훈하는 자들이 눈이 어두워 참된 진리를 대적하였고, 재림의 주가 오실 때에도 삯을 위하여 교훈하는 자들이 참된 진리를 대적하다가 망하게 될 것이다(미3:5, 11).
2. 보는 일에 눈이 밝아야 한다 (7:1~5)
(마7:1) 비판을 받지 아니하려거든 비판하지 말라
(마7:2) 너희의 비판하는 그 비판으로 너희가 비판을 받을 것이요 너희의 헤아리는 그 헤아림으로 너희가 헤아림을 받을 것이니라
(마7:3) 어찌하여 형제의 눈속에 있는 티는 보고 네 눈속에 있는 들보는 깨닫지 못하느냐
(마7:4) 보라 네 눈속에 들보가 있는데 어찌하여 형제에게 말하기를 나로 네 눈속에 있는 티를 빼게 하라 하겠느냐
(마7:5) 외식하는 자여 먼저 네 눈속에서 들보를 빼어라 그 후에야 밝히 보고 형제의 눈속에서 티를 빼리라
사람이라는 것은 자기 부족을 모르는 사람이 남의 부족을 모르고 자기 부족을 아는 사람이 남의 부족도 알게 된다. 바리새교인들은 자기 부족을 모르기 때문에 예수님을 정죄했던 것이다. 예수님이 죄인을 찾아가서 전도할 때에 그것을 불의한 일로 보았고, 예수님이 안식일에 병을 고친다고 해서 범죄자로 판정했고, 예수님이 죄인의 집에서 음식을 잡수실 때에 먹기를 탐하는 자라고 하였고, 예수님이 귀신을 쫓아낼 때에 귀신의 왕 바알세불을 힘입어서 귀신을 쫓아낸다고 하였다.
눈에다 검은 안경을 쓰면 다 검게 보이듯이 마음에 욕심이 있는 사람은 아무리 옳은 일을 하는 걸 보아도 옳게 보이지 않고 다 자기 마음같이 인정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주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네 눈 속에 들보가 있는데 어찌하여 형제에게 말하기를 네 눈 속에 티를 빼라 하느냐 먼저 네 눈 속의 들보를 빼어라 그 후에야 밝히 보고 형제의 눈 속에 티를 빼리라” 하셨다. 이것은 자기 마음 가운데 욕심이라는 들보를 뽑아서 없애는 자라야 사람을 바로 볼 수 있다는 것이다.
사람이라는 것은 먼저 자기 자신의 죄악성을 없애버리는 일이 있어야 눈이 밝은 종교인이 될 수 있다. 그러므로 마음의 들보를 뽑은 자의 영계를 다음과 같이 말한다.
첫째 : 천국을 바라보는 눈이 열려진다.
둘째 : 성경에 눈이 밝아진다.
셋째 : 모든 일에 눈이 밝아진다.
주님께서 세상에 오셔서 입을 열어 말씀하실 때에 마음이 가난한 자가 천국을 볼 것이라고 하였다. 오늘날 과학문명이라고 하지만 실지는 흑암이라고 본다. 왜냐하면 과학문명은 죄를 부끄러워하지 않는 사회를 이루었기 때문이다.
이 세상을 눈이 밝은 자가 볼 때는 분명히 심판기이다. 왜냐하면 모든 선지는 인간 종말의 심판기는 이방의 빛이 되는 그리스도의 교훈이 세계에 전파된 후에 극도로 진리를 대적하는 강한 세력이 북방으로부터 올 것과, 미운 물건이 거룩한 곳에 설 것과, 사랑이 식어지므로 불법이 성하게 될 것과, 모든 사람이 짐승의 세력 앞에 머리를 숙일 것과, 빈민이 부자 앞에 억압을 당할 것과, 세상이 한 시간에 불타게 되는 위기가 올 것을 말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 성경을 자세히 보고 세상을 본다면 분명히 심판기로 보게 된다. 누구든지 섬기는 눈이 밝고 보는 눈이 밝은 자는 하나같이 이 시대를 분별하게 될 것이다.
결 론
가장 슬퍼할 자는 눈이 어두운 자요, 가장 기뻐할 자는 눈이 밝은 자라고 본다. 눈이 밝으냐, 어두우냐 하는 것은 죽느냐, 이기느냐 하는 문제가 결부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섬기는 눈이 밝아서 보물을 하늘에 쌓아두어야 할 것이며, 보는 눈이 밝아서 잘못 판단하는 일이 없어야 할 것이다.
71년 12월호 <설교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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