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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행전 사울의 회개와 교회 발전 - 행9:1~18, 요절:1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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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  론


  하나님께서 당신의 교회를 세운 목적은 천국인 동시에 당신의 종들에게 왕권을 주자는 것이다. 그러므로 언제나 순교의 피가 흐르게 하고 그 대신 역사하는 종이 나와서 복음을 전하고 또 그 종이 순교하면 다른 종을 세워 역사하게 하여서 기독교 역사를 순교적인 역사로 보게 되는 것이다. 사울은 스데반이 순교를 할 때에 그것이 마땅하다고 생각하며 하등 양심에 거리끼게 생각조차 하지 않았던 것이다. 그러나 스데반이가 순교한 후에 사울이 회개하고 기독교 발전의 큰 열매를 가져오게 된 것이다.



  1대지 : 살기가 등등한 사울 (1~2)


(행9:1) 사울이 주의 제자들을 대하여 여전히 위협과 살기가 등등하여 대제사장에게 가서

(행9:2) 다메섹 여러 회당에 갈 공문을 청하니 이는 만일 그 도를 좇는 사람을 만나면 무론남녀하고 결박하여 예루살렘으로 잡아 오려 함이라


  사울은 기독교를 없애버리는 것이 가장 옳은 일이라고 생각을 했다. 그러므로 스데반을 죽이는 것을 옳게 보는 동시에 큰 격동을 받아 위협과 살기가 등등해서 대제사장에게 가서 기독교를 없이하는 결정을 하고 사방으로 흩어진 교인들을 없애기 위하여 길을 떠났던 것이다. 사울은 율법주의자로 율법을 숭배하는 사람이니만큼 기독교를 크게 오해하고 나섰던 것이다. 예수만 믿으면 누구든지 구원을 받는다는 것을 불법적인 이단으로 보고 정통 유대교에 충성을 다하는 청년으로 나섰던 것이다.



  2대지 : 땅에 엎드러진 사울 (3~5)


(행9:3) 사울이 행하여 다메섹에 가까이 가더니 홀연히 하늘로서 빛이 저를 둘러 비추는지라

(행9:4) 땅에 엎드러져 들으매 소리 있어 가라사대 사울아 사울아 네가 어찌하여 나를 핍박하느냐 하시거늘

(행9:5) 대답하되 주여 뉘시오니이까 가라사대 나는 네가 핍박하는 예수라


  주님께서 나타나실 때에 사울은 땅에 엎드러졌다. 왜냐하면 해보다 더 밝은 빛이 자기에게 비춰지기 때문이다. 사울에게 나타나신 예수님께서 가라사대 “사울아 사울아 네가 어찌하여 나를 핍박하느냐”라고 하셨던 것이다. 이것을 본다면 인간 세력이라는 것은 감히 주님 앞에 설 수가 없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주님의 빛만 나타나도 꼼짝 못하고 쓰러지는 것이 인간이다.

  오늘날 어리석은 인간들이 예수님을 반대하고 있으며 공산당들은 기독교를 세상에서 없이한다는 사상을 가지고 나오지만 주님의 빛이 나타날 때에 엎드러진 사울같이 되고 말 것이다. 사울에게 나타나신 주님은 온유하게 나타나셨지만 오늘날 예수님을 반대하고 나오는 원수들은 진노하신 주님이 나타나실 때에 슬피 통곡을 할 것이다. 인간이라는 것은 부활하신 주님 앞에 감히 머리를 들 수 없이 쓰러지고 말 인간이다.

  지금은 주님께서 잠잠히 계신 것은 바울이 전한 복음을 믿으면 누구든지 구원을 받는 때이니 사람마다 주님께서 나타나실 필요가 없다. 그러나 지금도 특별한 종에게 특별한 일이 있을 때에 주님께서 나타나시는 일이 있다.



  3대지 : 눈이 어두워진 사울 (6~9)


(행9:6) 네가 일어나 성으로 들어가라 행할 것을 네게 이를 자가 있느니라 하시니

(행9:7) 같이 가던 사람들은 소리만 듣고 아무도 보지 못하여 말을 못하고 섰더라

(행9:8) 사울이 땅에서 일어나 눈은 떴으나 아무 것도 보지 못하고 사람의 손에 끌려 다메섹으로 들어가서

(행9:9) 사흘 동안을 보지 못하고 식음을 전폐하니라


  사울의 눈은 보이지 않게 되었다. 왜냐하면 주의 빛이 눈에 비춰졌기 때문이다. 눈이 어두워진 것은 사울은 눈먼 소경 같이 인간이라는 것을 보여준 것이다. 소위 하나님을 공경한다는 자가 하나님의 교회를 없이하겠다고 나선 것은 소경 중에도 소경이 아닐 수 없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그 눈을 멀게 하여 절실히 회개를 하도록금 하게 하신 것이다. 사울이 너무나 강포한 일을 하기 때문에 하나님은 깨닫게 해주신 것이다.



  4대지 : 이방 사도로 택한 사울 (10~18)


(행9:10) 그 때에 다메섹에 아나니아라 하는 제자가 있더니 주께서 환상 중에 불러 가라사대 아나니아야 하시거늘 대답하되 주여 내가 여기 있나이다 하니

(행9:11) 주께서 가라사대 일어나 직가라 하는 거리로 가서 유다 집에서 다소 사람 사울이라 하는 자를 찾으라 저가 기도하는 중이다

(행9:12) 저가 아나니아라 하는 사람이 들어와서 자기에게 안수하여 다시 보게 하는 것을 보았느니라 하시거늘

(행9:13) 아나니아가 대답하되 주여 이 사람에 대하여 내가 여러 사람에게 듣사온즉 그가 예루살렘에서 주의 성도에게 적지 않은 해를 끼쳤다 하더니

(행9:14) 여기서도 주의 이름을 부르는 모든 자를 결박할 권세를 대제사장들에게 받았나이다 하거늘

(행9:15) 주께서 가라사대 가라 이 사람은 내 이름을 이방인과 임금들과 이스라엘 자손들 앞에 전하기 위하여 택한 나의 그릇이라

(행9:16) 그가 내 이름을 위하여 해를 얼마나 받아야 할 것을 내가 그에게 보이리라 하시니

(행9:17) 아나니아가 떠나 그 집에 들어가서 그에게 안수하여 가로되 형제 사울아 주 곧 네가 오는 길에서 나타나시던 예수께서 나를 보내어 너로 다시 보게 하시고 성령으로 충만하게 하신다 하니

(행9:18) 즉시 사울의 눈에서 비늘 같은 것이 벗어져 다시 보게 된지라 일어나 세례를 받고


  주님께서 ‘아나니아’라고 하는 종에게 나타나서 다음과 같이 알려주었다.


  첫째 : 다소 사람 사울을 찾아서 안수하라고 하심 (10~12)

  둘째 : 이방에 복음을 전하기 위하여 택한 그릇이라고 하심 (13~15)

  셋째 : 핍박을 많이 받으리라고 하심 (16)


  아나니아가 사울에게 안수하니 새사람이 되었다. 하나님께서는 언제나 택한 자를 찾는 데 있어서는 아무리 불의한 일을 하여도 찾아서 의로운 종으로 쓰는 것이다. 아무리 죄를 지어도 그대로 본다는 것이 아니고 죄를 지었다 하여도 회개시켜서 완전한 사람을 만들어 쓰는 것이다. 기독교를 박멸시키던 사울이가 기독교를 세계에 전파한다는 것이 교회 발전의 큰 위력이 되는 것이다. 지금도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역사를 계속하시고 있는 것이다. 아무리 공산당이요 무신론자라도 택한 자는 강권으로 회개시켜 구원하는 것으로 새 시대를 이룰 것인데 이것을 기독교의 위력이라는 것이다.



  결  론


  하나님은 언제나 위대한 역사를 하실 적에 인간의 생각과는 달라서 인간이 볼 때에는 안 될 것 같으나 되게 하시는 것이다.



71년 9월호 <장년 공과편 - 교회 발전의 위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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