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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린도전후서 성령으로 한 몸된 교회 - 고전12:12~2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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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세상에는 많은 단체가 있다. 그러나 이 단체라는 것은 성령으로 연결된 것이 아니고 사업적, 정치적인 한 단체에 불과한 것이다. 완전한 종교단체라는 것은 성령으로 한 몸과 같이 연결된 단체이다. 그리스도께서는 이러한 단체를 이루기 위하여 자기 몸을 제물로 바치고 승리의 부활을 하셔서 성령을 보내는 일에 전력을 두고 계신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 기독교는 성령으로 한 몸된 교회를 이루지 못한다면 주님과는 하등에 관계가 없다고 볼 수 있다.

  이제 성령으로 한 몸된 교회라는 것이 무엇이냐 하는 것을 본문을 통하여 증거하기로 한다.



  1. 성령의 세례를 받으므로 한 몸된 단체 (12~13)


(고전12:12) 몸은 하나인데 많은 지체가 있고 몸의 지체가 많으나 한 몸임과 같이 그리스도도 그러하니라

(고전12:13) 우리가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유자나 다 한 성령으로 세례를 받아 한 몸이 되었고 또 다 한 성령을 마시게 하셨느니라


  우리는 성령의 세례를 받아야만 그리스도에게 속한 자라고 인정하게 된다. 왜냐하면 그리스도께서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유자나 다 성령을 부어줄 수 있는 생명의 주가 되시기 때문이다. 그리스도께서 살아계신다는 것은 우리가 성령의 세례를 받음으로만 확증할 수 있는 것이다. 만일 무신론 공산당이 세계를 침투하고 있는 이때에, 성령의 세례를 받는 체험이 우리에게 없다면 대항해서 싸울 용기가 없을 것이다.

  성령으로 세례를 받는 일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증거한다. 나의 체험에 의하면 중생을 받고도 성신의 역사가 여러 가지 계단이 있다는 것을 말한다. 처음에는 자기 죄를 자복하는 회개가 있다. 이것은 예수님을 믿기로 작정하고 영생의 진리를 알아보려고 할 때에 기도 중 어려서부터 지었던 죄가 전부 생각이 나면서 눈물로 고백하는 일이 있게 된 것이다. 그러므로 이때에 우리 주님의 십자가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다는 확신이 생기게 되는 체험을 받았다. 그때부터 기도가 열려지고, 진리가 열려지며, 기쁨이 넘치는 생활을 하게 되었던 것이다. 그러나 중심 성결을 지키지 못하고 항상 여러 가지 죄가 마음에 발생하는 것을 억제하는 일이 있게 되었다. 순간적으로 마음이 깨끗할 때도 있고, 죄가 발생할 때도 있는 생활을 하게 되었던 것이다. 그때에는 내가 마음에까지 죄가 완전히 없어진다는 것을 믿지 못하고 있었다.

  그러나 지금으로부터 16년 전에 중심 성결을 얻기 위하여 입산 기도를 하게 되었던 것이다. 내 마음과 생각으로 범한 죄를 7일간 회개하고 9일 만에 뜨거운 마음을 받아서 이날까지 죄라는 것이 마음에서 발생해본 일이 없다. 이것은 내 결심이 아니요, 마음이 항상 뜨거워 있으므로 자동적으로 되는 일이다. 나는 마음에 뜨거운 불이 항상 충만해 있으므로 마음에 죄가 조금도 발생을 못 하는 것을 17년째 체험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만으로 전부가 아니었다. 남을 살리기 위하여 3일간 밤을 새워 기도하다가 생수의 역사가 흘러오는 체험을 받게 되었던 것이다. 1957년부터 1967년까지 계속해서 생수의 은혜를 입으로 마시고 온 몸에 충만해진 생활을 할 때에 얼마든지 기도할 수 있는 영계에 들어가게 되었고, 신앙 장성으로 이루어지는 인격적 체험을 가지게 되었다. 이것이 은혜 시대의 성령의 역사라고 확신하는 바이다.

  그 후에 여호와를 바라보고 호소하던 중, 새 힘을 받으므로 몸의 변화라는 것을 체험하고 있다. 여기에 대해서는 세밀한 체험을 말할 필요가 없고, 성령의 세례로 역사하는 것을 체험한 바에 의하여 증거하는 것뿐이다.

  그러므로 성령의 세례로 인격 완성이 되는 것이다. 성령을 통하여 오는 은혜는 한 번만 있고 끝나는 것이 아니요, 항상 새로운 역사가 흘러오는 것이라고 믿는다. 오늘의 교회가 성령의 체험이 너무 박약한 가운데서 성령의 역사를 경홀히 생각하는 폐단도 있다. 성신의 역사라는 것은 죽은 영혼을 살리는 데서 끝이 아니고, 얼마든지 인격을 향상시켜서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이르는 것이다(엡4:13).



  2. 조금이라도 서로 떠날 수 없는 단체 (14~25)


(고전12:14) 몸은 한 지체뿐 아니요 여럿이니

(고전12:15) 만일 발이 이르되 나는 손이 아니니 몸에 붙지 아니하였다 할찌라도 이로 인하여 몸에 붙지 아니한 것이 아니요

(고전12:16) 또 귀가 이르되 나는 눈이 아니니 몸에 붙지 아니하였다 할찌라도 이로 인하여 몸에 붙지 아니한 것이 아니니

(고전12:17) 만일 온 몸이 눈이면 듣는 곳은 어디며 온 몸이 듣는 곳이면 냄새 맡는 곳은 어디뇨

(고전12:18) 그러나 이제 하나님이 그 원하시는대로 지체를 각각 몸에 두셨으니

(고전12:19) 만일 다 한 지체 뿐이면 몸은 어디뇨

(고전12:20) 이제 지체는 많으나 몸은 하나라

(고전12:21) 눈이 손더러 내가 너를 쓸데 없다 하거나 또한 머리가 발더러 내가 너를 쓸데 없다 하거나 하지 못하리라

(고전12:22) 이뿐 아니라 몸의 더 약하게 보이는 지체가 도리어 요긴하고

(고전12:23) 우리가 몸의 덜 귀히 여기는 그것들을 더욱 귀한 것들로 입혀 주며 우리의 아름답지 못한 지체는 더욱 아름다운 것을 얻고

(고전12:24) 우리의 아름다운 지체는 요구할 것이 없으니 오직 하나님이 몸을 고르게 하여 부족한 지체에게 존귀를 더하사

(고전12:25) 몸 가운데서 분쟁이 없고 오직 여러 지체가 서로 같이하여 돌아보게 하셨으니


  성령으로 이루어진 교회는 어떤 도덕이나 의식이나 교권을 중심하는 것보다 성령으로 말미암아 받은 자기 사명에서 서로 떠나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것이다. 예를 든다면, 눈이나 입이나 손이나 발이나 그 밖의 모든 지체가 자기 홀로는 아무것도 할 수가 없으므로 서로 떠날 수 없는 것과 같다. 눈이 아무리 보아도 수족이 없다면 아무런 효과를 발휘할 수 없고, 아무리 수족이 있다 하여도 눈이 없다면 아무런 일을 할 수가 없을 것이다.

  이와 같이 성령으로 한 몸된 단체라는 것은 성신의 소욕을 이루기 위한 데서 움직이는 것이니, 모든 사람들은 하나같이 성신의 인도를 따라서 자기 사명을 하되 그리스도의 왕국을 이루기 위하여 단체적인 행동을 취하여야만 될 것이다. 아무리 큰 사명을 가진 자라도 자기 홀로는 할 수가 없고, 서로 뭉쳐지는 단체가 있음으로만 그 사명을 하게 된다. 그러므로 오늘의 교회가 서로 하나가 되지 못하는 것은 성령의 역사가 없는 증거라고 본다.



  3. 고통도 영광도 함께 받는 단체 (26~27)


(고전12:26) 만일 한 지체가 고통을 받으면 모든 지체도 함께 고통을 받고 한 지체가 영광을 얻으면 모든 지체도 함께 즐거워하나니

(고전12:27) 너희는 그리스도의 몸이요 지체의 각 부분이라


  기독교는 어떤 사람을 통하여 이루어진 단체가 아니요, 머리 되시는 그리스도를 통하여 생명의 교통을 받는 단체이다. 그러므로 고통을 받아도 주님을 위하여 받는 것이요, 영광을 얻어도 주님을 위하여 얻는 것이니 영원히 동거동락할 단체이다. 어떤 형제가 괴로움을 받을 때에 감당할 수 없으리만큼 내 마음도 괴롭고, 어떤 형제가 영광을 얻을 때에 감당할 수 없으리만큼 내 마음도 기쁜 것은 성령으로 하나가 된 단체이기 때문이다.

  만일 어떤 종이 자기의 명예를 내세우기 위하여 동역자를 비판한다면 성령으로 역사하는 사람이라고 할 수 없다. 성령이 함께하는 사람은 어떤 형제가 시험을 만날 때에 애를 쓰며 기도하게 되고, 어떤 형제가 역사할 때에 기뻐서 같이 찬송하게 되는데 이것이 영원히 동거동락할 단체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주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나를 믿는 소자 하나에게 행한 것이 내게 행한 것이라”고 하셨고, “누구든지 나를 믿는 소자 하나를 실족케 한다면 차라리 연자 맷돌을 그 목에 달리우고 깊은 바다에 빠뜨리우는 것이 나으리라”고 하셨다. 우리 기독교 안에서 형제를 내 몸같이 사랑하게 되는 것은 도덕을 초월한 성신의 열매로 되는 것이다.



  결  론


  사람이라는 것은 완전한 단체가 없이는 완전한 일을 할 수가 없고, 완전한 인격적인 행동을 할 수도 없다. 그러므로 성신의 역사가 임하는 목적은 단체적인 역사를 하기 위한 것인 줄 알고 은혜를 받은 자들로서 합심 단결하는 일에 전력을 두어야 할 것이다.



72년 4월호 <설교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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