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립보서 십자가의 원수는 멸망 - 빌3:17~1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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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께서 타락한 인생을 그냥 두고 멸망을 시킨다면 이것은 불의가 될 것이다. 왜냐하면 인간이 모태로 날 때부터 억울하게 죄에서 태어나서 하나님도 모르고 예수님도 모르고 살다가 죽는다는 것은 너무나 억울한 일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을 알아보려고 해도 알 수도 없고, 공경하려고 해도 공경할 수도 없고, 진리를 들어보려야 들어볼 수도 없는 것이 세계 인류의 비극이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보내어 만민의 죄를 위하여 죽게 하시고 누구든지 이 십자가를 믿으면 구원을 받는다고 전하는 데도 불구하고 듣고도 십자가의 원수가 되는 인간들은 멸망이라는 것이다.
그러면 십자가의 원수에 대하여 본문을 들어서 말한다.
1. 저희의 배로 신을 삼는 일이다 (19상반절)
(빌3:17) 형제들아 너희는 함께 나를 본받으라 또 우리로 본을 삼은 것 같이 그대로 행하는 자들을 보이라
(빌3:18) 내가 여러 번 너희에게 말하였거니와 이제도 눈물을 흘리며 말하노니 여러 사람들이 그리스도 십자가의 원수로 행하느니라
(빌3:19) 저희의 마침은 멸망이요 저희의 신은 배요 그 영광은 저희의 부끄러움에 있고 땅의 일을 생각하는 자라
사도 바울이 십자가의 도를 모든 사람에게 전하기 위하여 헐벗고 굶주리며 눈물과 땀과 피 흘리기까지 복음을 증거해도 짐짓 하나님의 사랑을 대적하고 자기의 배부르는 것을 목적하고 하나님의 진리를 대적하는 자는 멸망이라고 말한 것은 다음과 같은 의의가 있다.
첫째 : 하나님의 사랑을 필요 없게 생각하는 일
둘째 : 사람에게 영생이 없다는 일
셋째 : 사람은 고등동물이라는 일
이것이 십자가의 원수가 된다. 짐승이라고 하는 것이 이런 인간들을 가리킨 것이다. 아무리 죄가 많더라도 하나님의 사랑을 받아들이는 자는 의로운 자라고 인정하신다. 그러나 하나님의 사랑을 대적하고 죄를 짓고 다니면서 짐짓 죄를 사하는 진리를 부인하고 먹고 마시는 것을 좋아한다면 이것은 멸망할 자식의 행동이므로 멸망을 받아도 마땅하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진리를 대적했기 때문이다.
2. 부끄러운 것을 영광으로 생각하는 일이다 (19중반절)
(빌3:19) 저희의 마침은 멸망이요 저희의 신은 배요 그 영광은 저희의 부끄러움에 있고 땅의 일을 생각하는 자라
인간의 가장 부끄러운 일은 십자가를 믿지 않고 사는 생활이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완전한 사랑이 자기를 살려주는 것인데 살리는 일을 오히려 원수로 알고 자기를 죽이는 일을 영광으로 아는 일이기 때문이다. 예를 든다면, 어떤 사람이 빚을 많이 졌는데 그 빚을 탕감해주기 위하여 많은 돈을 가지고 조용한 밤에 그 집을 찾아와 문을 두드릴 적에 빚에 단련을 받던 사람이 문을 걸어매고 밤에도 빚을 받으러 왔다고 야단을 친다면 이것이 알고 보면 부끄러운 일이 될 것이다.
이 세상의 인간들이 자기들의 죄를 사해주기 위하여 누구든지 예수를 믿고 구원을 받으라고 외칠 때에 도리어 그 사람을 원수로 알고 핍박하고 심지어 죽이는 일까지 있다는 것은 얼마나 부끄러운 일인가. 죄를 진 인간들에게 죄를 사해주겠다고 하는 데도 불구하고 싫어한다는 것은 영원히 부끄러움을 당할 일이라고 본다.
어떤 사람이 말하기를 예수를 믿되 젊어서 믿을 일이 아니요 늙어서 믿을 일이라고 한다면 이것이 부끄러운 일이다. 젊어서 훌륭하게 되어 훌륭한 일을 하는 것을 오히려 부끄러운 일인 줄 알고 젊어서 마음대로 먹고 마시며 재미있게 노는 것을 영광으로 본다면 이 사람이 부끄러운 것을 영광으로 삼는 자이다. 사람이 일생 동안 옳은 일을 위하여 충성을 다하면 세세 왕권의 영광이 있는 데도 불구하고 젊어서 마음대로 놀고 자기 육의 만족을 채우는 것을 영광으로 본다는 것은 영원히 부끄러운 일을 당할 일이라고 본다.
십자가의 원수라는 것은 진리를 위하여 수고하는 것을 부끄럽게 알고 그날그날 자기의 육적 안락을 꿈꾸고 살아나가는 생활이다. 하나님의 아들은 세상에 와서 인간을 위하여 빈곤의 생활과 노방전도의 생활과 십자가의 혹독한 형벌을 받으시면서 구원을 완성하셨는데 그 은혜를 모르고 그날그날 자기 육의 만족을 위하여 사는 생활은 너무나 수치스러운 일이라고 본다.
3. 땅의 일만 생각하는 일이다 (19하반절)
(빌3:19) 저희의 마침은 멸망이요 저희의 신은 배요 그 영광은 저희의 부끄러움에 있고 땅의 일을 생각하는 자라
하나님께서 천지 만물을 창조하실 때에 이 땅을 영원한 처소로 삼은 것이 아니다. 천국을 위하여 천지를 창조하시고 사람을 낼 때에 ‘너는 땅에서 살다가 흙으로 돌아가라’는 것이 목적이 아니고 ‘내 말을 순종하면 생명과를 먹고 영생할 몸으로 영원한 천국의 영광을 누리게 된다’는 것이 사람을 창조한 목적이다. 그런데 사람이 땅의 일만 생각하는 것으로 말미암아 하나님 말씀을 순종치 않는 흑암의 길을 걷게 된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독생자를 보내어 사람을 하늘에 속한 형체가 이루어지도록 해서 신령한 사람으로 천국의 영광을 누리게 하자는 것이 십자가의 목적이요, 십자가의 사랑인 것이다. 그래도 땅의 일만 생각하는 자는 사탄의 자식이 되어 멸망을 할 것이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대적이 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베드로가 예수님을 붙들고 십자가에 죽는 것을 면케 해달라고 할 때에 “사탄아 물러가라”고 책망을 했던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땅의 것을 생각지 않고 하늘의 것을 생각하고 구하는 자에게 모든 것을 다 주실 것이로되, 하늘의 것을 생각지 않고 땅의 것만 생각하는 자에게는 당신의 대적으로 알고 아무런 응답을 하지 않기 때문에 자동적으로 멸망을 받게 되는 것이다. 누구든지 그날그날에 십자가를 지고 위의 것을 목적하고 싸우는 생활이 아니고는 십자가의 의를 이룰 수가 없는 것이다.
결 론
십자가의 원수라는 것은 죄인이 되는 것보다도 악인이 되는 것이니 악인에게 멸망이 따르는 것은 하나님의 원수가 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십자가의 도가 온 세상에 전파되고 다음에는 십자가의 원수를 없애고 십자가의 승리로 새로운 왕국을 이루게 되는 것이다. 십자가의 의는 영원한 영생을 주기 위하여 하나님의 의가 세상에 나타난 것이요, 우리 사람의 할 일은 그 의를 순종하는 것뿐이니 그 의를 대적하는 것이 멸망이 된다.
71년 10월호 <설교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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