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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복음 개인 신앙에 대한 비유 - 마13:17~23, 요절:2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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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  론


  주님께서 성신의 역사가 임하여 모든 사람이 바로 깨달을 때까지는 언제나 비유로 말씀한 것은 다음과 같은 의의가 있다. 비유라는 것은 모르는 사람들이 그 비유를 통하여 마음이 진리로 기울어지는 동시에 그 진리를 체험하는 것이 목적이다. 하나님은 대자연을 움직이는 것은 목적이 천국을 위하여 움직이는 것이니 식물에 대한 이치나 광물에 대한 이치나 인류 사회를 이루는 진리와 합법적이라는 것을 가르친 것이다.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께서 만물의 이치나 신앙의 이치나 꼭 같다는 것을 말씀한 것이 비유다.

  이제 개인 신앙에 대한 비유를 깊이 깨달아야 할 것이다.



  1대지 : 신앙은 일시적인 흥분이 아니라는 것을 비유함 (17~21)


(마13:17)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많은 선지자와 의인이 너희 보는 것들을 보고자 하여도 보지 못하였고 너희 듣는 것들을 듣고자 하여도 듣지 못하였느니라

(마13:18) 그런즉 씨 뿌리는 비유를 들으라

(마13:19) 아무나 천국 말씀을 듣고 깨닫지 못할 때는 악한 자가 와서 그 마음에 뿌리운 것을 빼앗나니 이는 곧 길 가에 뿌리운 자요

(마13:20) 돌밭에 뿌리웠다는 것은 말씀을 듣고 즉시 기쁨으로 받되

(마13:21) 그 속에 뿌리가 없어 잠시 견디다가 말씀을 인하여 환난이나 핍박이 일어나는 때에는 곧 넘어지는 자요


  신앙은 역사적인 체계를 가지는 동시에 신앙 양심에 산 체험이 있어야 될 것이다. 만일 어떤 사람이 믿으면 구원을 받는다, 복을 받는다 하는 말을 일시 흥분에 끌려 금시 즉각으로 무슨 일이 다 이루어지는 줄 생각하고 경솔하게 피동적으로 움직인다는 것이 개인 신앙의 완전성을 가질 수 없고, 모든 선지가 예언한 말씀을 믿을 적에 시대적인 하나님의 섭리를 분명히 알아서 반드시 어려운 문제가 닥쳐오더라도 이것은 성서에 입각하여 반드시 있어야 될 일이라고 깨닫는 마음이 있어야 된다.

  그러므로 주님께서 길가에 뿌린 씨와 돌밭에 뿌린 씨를 들어서 잠깐 동안 되어지는 일에 흥분되어 움직이는 일을 따라가는 자의 신앙 상태를 가르쳤다. 돌밭에 뿌린 씨가 비가 올 때는 속히 자라는 것 같으나 가뭄이 올 때에 말라지고 마는 것같이 일시 모든 일이 은혜롭게 될 때에 일이 다 된 것같이 생각하다가 그 일이 다 이루어지지 않고 그 일로 말미암아 어려움이 올 때에 넘어지고 만다는 것은 한 흥분에 끌리는 신앙이라고 보게 된다. 



  2대지 : 신앙은 세상 영화가 필요 없다는 것을 비유함 (22)


(마13:22) 가시떨기에 뿌리웠다는 것은 말씀을 들으나 세상의 염려와 재리의 유혹에 말씀이 막혀 결실치 못하는 자요


  신앙이라는 것은 세상의 것을 초월하여 천국의 것을 목적한 것인데 세상 재리에 끌린다는 것은 기독교 신앙에서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 일이다. 왜냐하면 신앙의 대상자 되시는 성부, 성자, 성신은 역사하는 목적이 세상 물질이나 영광을 주자는 목적이 아니요 영원하고도 완전한 것을 주자는 목적인데 신앙자가 세상의 일을 생각하고 염려를 한다든지 그 물질에 마음이 끌린다는 것은 그 시간부터 벌써 심령 상태가 죽는다는 것을 알아야 할 것이다. 사람이 하나님보다 물질을 더 사랑한다는 것은 우상과 같은 죄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신앙이라는 데는 하나님을 믿되 하나님의 완전 축복을 믿고 그 하나님 뜻에 모든 것을 맡기고 나간다는 용기가 없으면 그 신앙은 아무런 열매를 맺지 못할 것이다. 다시 말하면, 목적을 천국에 두고 싸우는 생활에서 세상에 끌린다는 것은 그 시간부터 옆길로 가는 생활이니 옆길로 가는 시간부터 하나님과는 멀어지는 것이니 신앙자는 세상의 모든 물질이나 영광을 분토같이 보아야만 될 것이다. 



  3대지 : 항상 깨닫는 신앙을 가져야 한다는 것을 비유함 (23)


(마13:23) 좋은 땅에 뿌리웠다는 것은 말씀을 듣고 깨닫는 자니 결실하여 혹 백배, 혹 육십배, 혹 삼십배가 되느니라 하시더라


  신앙생활은 정상적인 신앙에 서야 될 것이니 정상이라는 것은 항상 무슨 일을 당하든지 깨닫는 것을 가르쳤다. 아무리 열심이 있다 하여도 그 자체가 열매 되는 것이 아니고, 깨닫는 마음에서라야 열매가 되는 것이다. 깨닫는 마음이라는 것은 마음에 조금도 거리끼는 것이 없이 사는 생활이니 하나님과 교통하는 마음에는 작은 죄라도 잘못인 줄 깨닫는 동시에 하나님 말씀에 자기 부족을 깨닫는 동시에 깊이 깨달아지는 것을 가르쳤다.

  돌밭에나 가시떨기가 있는 땅에는 그 내막이 순수하지 못하고 굳은돌이 박혀있고 쓸데없는 쓴 뿌리가 박혀있으니 도저히 깨닫는 마음이 있을 수 없다. 깨닫는 마음이라는 것은 먼저 자기 마음에 아무것도 없는 깨끗한 그릇이 되어야 할 것이니, 무엇이나 아버지의 뜻이 아니라면 조금도 마음을 둘 필요도 없는 생각에서 순수하게 하나님만 바라보고 그리스도의 십자가만 생각하는 마음이라야 항상 깨닫는 마음이 있게 되니만큼 성령은 역사해주시는 것이다. 성신의 역사라는 것은 열매를 많이 맺자는 것이니 누구든지 자기 부족을 깨닫고 하나님의 완전한 사랑을 깨달을 때에 하나님께로부터 모든 보화로운 것이 마음에 충만히 임하게 되므로 열매가 많아지는 것이다.

  이제 깨닫는 마음에 대해서 다음과 같은 요소를 말한다. 

  1) 작은 데서부터 충성한다는 것이요,

  2) 은밀한 가운데서 삼가는 것이요,

  3) 어려운 일이 올 때 담대한 것이다.

  이 세 가지가 있는 사람은 항상 깨닫는 지각을 하나님께 받으므로 모든 일에 실패 같으나 결국은 성공이요, 모든 일이 아무것도 아닌 작은 일 같으나 결국은 큰 성과를 거두게 될 것이다.

 


  결  론


  신앙이라는 것은 자연법칙에 의하여 하나님의 진리가 글자 그대로 이루어지는 것을 믿는 것이니, 무조건 열심이 있다는 것은 오히려 불행스러운 일이 되고 말 것이니 반드시 깊이 깨닫는 마음에서 모든 난제를 해결하고 나가는 것이 있음으로만이 열매가 있는 종이 될 것이다.



70년 10월호 <장년 공과편 - 비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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