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복음 신앙의 역사를 비유함 - 마13:31~35, 요절:3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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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 론
신앙이라는 것은 어떤 정치나 교육이나 또는 도덕, 수양을 초월한 산 생명의 활동이라는 것을 비유하신 것이다. 만일 기독교 신앙의 큰 변동을 주는 산 활동이 없다면 기독교는 오늘의 세계를 정복할 수가 없을 것이다.
그러므로 주님께서 비유로 말씀할 때에 다음과 같은 비유로 하신 것이다.
1대지 : 겨자씨 비유 (31~32)
(마13:31) 또 비유를 베풀어 가라사대 천국은 마치 사람이 자기 밭에 갖다 심은 겨자씨 한 알 같으니
(마13:32) 이는 모든 씨보다 작은 것이로되 자란 후에는 나물보다 커서 나무가 되매 공중의 새들이 와서 그 가지에 깃들이느니라
겨자씨라는 것은 씨 중에 제일 작은 씨지만 그 속에 큰 나무를 이룰 수 있는 생명의 힘이 있으므로 밭에 심으면 자동적으로 큰 나무가 되어 공중에 새까지 와서 깃들일 수 있다는 것은 다음과 같은 3대 요소가 있다.
1) 지극히 작은 데서부터 하나님은 역사하신다.
하나님은 위대한 신이시지만 절대로 무엇이든지 역사를 시작할 때 인간이 아무런 기대를 할 수 없는 자리에서 시작하시는 하나님이다. 하나님의 아들이 세상에 올 때에 유대 땅 베들레헴 말구유에 탄생했다는 것은 너무나 육안으로 볼 때에 미미한 일이다. 하나님의 아들이 하필이면 세상에 탄생할 때에 찬 말구유 위에 누였다는 것은 인간들의 위신이나 도덕이나 또는 권리를 볼 때에 이것은 이치에 합당치 않은 일이다.
지금도 새로운 역사라는 것은 인간이 볼 때에 사람의 머리로써 도저히 옳다고 할 수 없는 자리에서 시작되게 하는 것이다. 이스라엘 왕국이 시작될 때에 농촌에서 양을 치던 이새의 가정에 어린 목자 다윗을 택해서 만왕의 왕조를 삼았다는 것도 너무나 미미한 일이요, 만왕의 왕이 올 때에 목수의 가정에 태어나되 마구간에서 났다는 것도 너무나 미미한 일이요, 인류 종말에 새 시대를 이루는 동방 역사도 지렁이 같은 야곱을 들어 쓴다는 것도 미미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이것은 왜냐하면 하나님은 무소불능의 신이시니 적은 흙덩이로 사람을 만든 것도 천국을 이루는 인생 창조의 근본이라면 그리스도를 통하여 천국을 이루는 것도 지극히 작은 데서 이루어진다는 것을 가르친 것이다.
2) 본질이 변치 않게 역사한다.
씨라는 것은 아무리 작은 겨자씨지만 어디를 가져다 심든지 겨자나무가 이루어지는 본질이 변치 않고, 나타나는 빛이나 맛이나 모양이 꼭 창조의 본질을 나타내는 것이다. 이와 같이 기독교 역사라는 것은 조물주 하나님의 창조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아무리 인간이 진실치 못하고 변함이 많다 하여도 반드시 그리스도의 생명을 통하여 목적을 이루어놓는 것이다.
기독교라는 것은 시작할 때가 생명으로 되었으니 끝도 생명이나 능력으로만이 이루어놓는 것이다. 만일 어떤 신자가 산 생명의 약동하는 체험을 받지 못했다면 이 사람은 아무런 열매가 없는 것이로되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생명을 받아들이는 산 체험이 있다면 다 그리스도의 가지로 열매가 나타나게 된다.
3) 유익을 주는 열매를 맺는다.
기독교는 조금도 인류에게 손해를 주는 일은 있을 수 없고 인류에게 참된 행복을 주자는 목적에서 열매를 맺는 종교니, 그리스도 한 분이 작은 아이로 세상에 탄생했지만 전 세계 인류를 천국으로 인도하며 큰 나라를 이루고야 마는 것이다. 그러면 지옥에서 고통을 받을 인간들이 수많은 생명들로 천국을 이루게 된 것은 얼마나 유익한 일인가.
2대지 : 누룩 비유 (33)
(마13:33) 또 비유로 말씀하시되 천국은 마치 여자가 가루 서말 속에 갖다 넣어 전부 부풀게 한 누룩과 같으니라
(마13:34) 예수께서 이 모든 것을 무리에게 비유로 말씀하시고 비유가 아니면 아무 것도 말씀하지 아니하셨으니
(마13:35) 이는 선지자로 말씀하신바 내가 입을 열어 비유로 말하고 창세부터 감추인 것들을 드러내리라 함을 이루려 하심이니라
기독교의 역사라는 것은 억지로 사람을 억압하는 종교가 아니고 자동적으로 하는 종교이다. 그러므로 누룩 비유에 있어서 다음과 같이 생각할 수 있다.
1) 맛을 나게 하는 것이다.
누룩이라는 것은 가루에 들어갈 적에 누룩 자체는 쓴 것 같으나 그것이 들어가므로 좋은 맛을 내는 것과 같이 기독교의 진리라는 것은 처음에는 쓴잔 같으나 이것을 받아들이고 보면 자연적 큰 변화를 받아 부드럽고도 맛있는 떡과 같이 가장 부드럽고 재미있는 가정과 교회를 이룰 수 있다. 만일 어떤 기독교가 부드럽지를 못하고 좋은 맛을 잃어버렸다면 이것은 참된 진리의 역사를 받는 교회라고 볼 수 없다. 언제나 진리라는 것은 큰 변화를 일으키는 힘이 있는 것이다.
2) 발전의 힘이 있다.
기독교는 그 진리가 들어갈 때에 누룩이 퍼져나가듯이 조금도 어떤 세력이 막을 수 없이 퍼져나가는 힘이 있다. 아무리 핍박하고 억압을 준다 해도 어느 정권이나 병력이 당할 수 없다.
예루살렘 다락방에 떨어진 불길이 일어날 때에 무서운 박해가 정권과 교권으로 있었으나 금일에 와서 무서운 박해를 이기고 세계를 복음화시킨 그 힘이라는 것은 그 진리가 산 생명을 주기 때문이다. 누구든지 기독교의 진리를 통하여 역사하는 종은 작은 일같이 시작하나 그 사회의 큰 변천을 일으킨 것이다.
결 론
주님께서 비유한 말씀대로 기독교는 대확장을 이룬 금일에 와서 우리는 이것으로만이 끝이 아니고 완전한 새 시대를 이루는 역사를 기준하여 필연코 마지막 결실을 하는 역사는 새로운 왕국을 이룰 것이라는 것을 굳게 믿고 나서야 된다. 지금 많은 기독교가 확장되었지만 참된 겨자씨의 열매가 참된 누룩의 변동을 일으키는 일이 끝난 것이 아니고 이제 더 크게 일어나게 되는 것을 알고 활동을 해야만 될 것이다.
70년 10월호 <장년 공과편 - 비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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