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립보서 배워지는 바울의 인격 - 빌4:10~1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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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께서 종된 자의 인격을 향상시킬 때에 날마다 배워지는 인격이 있게 하므로 종된 자로서 날마다 새로워지는 생활에서 모든 사람에게 유익을 주게 하신다. 예를 든다면 과실을 맺는 나무가 새로워지는 것이 있으므로 과실을 맺듯이, 종된 자의 생활이 새로이 배워지는 인격이 되므로 그 인격은 마른나무 같은 인격이 아니고 푸른 나무 같은 인격으로 날마다 새로워지는 발전이 있을 때에 그 종을 통하여 많은 열매를 맺으므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되는 것이다.
1. 자족하기를 배우는 인격 (10~11)
(빌4:10) 내가 주 안에서 크게 기뻐함은 너희가 나를 생각하던 것이 이제 다시 싹이 남이니 너희가 또한 이를 위하여 생각은 하였으나 기회가 없었느니라
(빌4:11) 내가 궁핍하므로 말하는 것이 아니라 어떠한 형편에든지 내가 자족하기를 배웠노니
사람의 인격이라는 것은 무슨 일을 당하든지 스스로 족하게 생각이 나도록 배워진다면 그 사람은 완전한 지각이 있는 인격이라고 본다. 마음에 불만과 불평이 있는 자는 지각이 없는 자요, 날마다 마음에 기쁨을 가지고 족하게 생각하는 사람은 무슨 일이든지 사랑의 근본이 되시는 하나님의 섭리를 깨닫는 자라고 본다. 왜냐 할 때에 하나님께서는 사랑하는 자에게 무엇이나 유익하도록 하는 모략의 신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모략이라는 것은 택한 자에게 유익을 얻도록 하는 방침을 세울 때에 어리석은 사람은 하나님의 뜻을 모르고 오히려 낙심을 하고 불만을 두고 점점 떨어지는 인격을 가지게 되지만, 자족하기를 배우는 인격이라는 것은 무슨 일을 당하나 새로운 발전을 보게 된다.
2. 비결을 배우는 인격 (12)
(빌4:12) 내가 비천에 처할 줄도 알고 풍부에 처할 줄도 알아 모든 일에 배부르며 배고픔과 풍부와 궁핍에도 일체의 비결을 배웠노라
인생의 완전한 인격에 도달하게 되는 것은 무슨 일이나 그 속에 숨어있는 비결을 알게 된다면 무슨 일을 당하든지 그 일이 다 형통을 이루는 열매가 되는 것이다. 예를 든다면 나무가 열매를 맺을 적에 추운 바람, 더운 바람, 뜨거운 태양, 부딪치는 폭우, 여러 가지를 거치게 된다. 그러나 그것이 있음으로써 그 나무는 건전한 나무를 이루게 된다.
이와 같이 사도 바울은 이방 사도로서 복음을 전하려 나선 몸으로 여러 가지 풍랑을 만났지만 거기서 신비한 체험을 받게 되는 동시에 어찌해서 이러한 일이 내게 온다는 것을 깨닫고 오히려 감사했던 것이다. 인간이 볼 때는 죽는 길 같으나 살고도 남음이 있고, 굶주리는 일 같으나 그런 일이 있으므로 더 풍부한 것이 오고, 실패를 당하는 일 같으나 그것으로 말미암아 주의 일이 더 확장되는 것을 볼 때에 오히려 하나님의 완전 역사를 알게 되었던 것이다.
3. 모든 일을 할 수 있는 사람이 됨 (13~15)
(빌4:13)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빌4:14) 그러나 너희가 내 괴로움에 함께 참예하였으니 잘하였도다
(빌4:15) 빌립보 사람들아 너희도 알거니와 복음의 시초에 내가 마게도냐를 떠날 때에 주고 받는 내 일에 참예한 교회가 너희 외에 아무도 없었느니라
주의 종이라는 사람은 배워지는 인격을 가질 적에 모든 일을 할 수 있는 인격이 된다. 왜냐하면 배워지는 인격에는 주의 능력이 나리기 때문이다. 주의 능력이라는 것은 주의 뜻을 따라 역사하되 바로 배워지는 인격을 들어 쓰기 때문이다.
능력이라는 것은 인간이 할 수 없는 일을 하게 하는 것인데, 이것은 주께서 어려운 시련을 주는 동시에 그 난관을 돌파하고 나가도록 역사하는 것을 주의 능력이라는 것이다. 주께서는 사람에게 능력을 주되 법을 따라 주는 것이니, 진리의 법이라는 것은 인간의 힘으로 할 수 없는 것을 하나님이 능력을 주어서 역사하게 한다는 것이 진리이기 때문이다.
능력을 줌으로써 일을 한다는 것이 원칙이지만 그 능력은 어떠한 일에 어떠한 목적을 위하여 따른다는 것을 알아야 할 것이다. 주께서 능력을 주는 일에 대하여서 다음과 같은 요소가 있다.
첫째 : 하나님께서 영광을 받기 위하여 능력을 주는 것이다. 사람이 자기 힘으로 한다는 것을 아버지께서는 영광으로 여기지 않고 오히려 미워하시는 것이다. 왜냐 할 때에 하나님의 대적이 되기 때문이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의 능력을 무시하고 자기 힘을 믿는다는 것은 하나님이 볼 때에 교만한 사람으로 보는 것이다.
둘째 : 약한 자를 구원하기 위하여 주는 것이니, 항상 약해서 쓰러지는 사람을 무시하지 말고 불쌍히 볼 때에 능력은 쓰러지는 사람을 위해서 나리는 것이다.
셋째 : 하나님은 마귀의 세력을 들어서 하나님의 종을 대적하게 하고 종에게 능력을 주어서 역사하게 하는 것은 그 종에게 마귀를 이김으로써 세세 왕권을 받게 하기 위한 선한 방법이다.
아담 하와는 능력을 받지 못했으므로 타락했지만, 지금 하나님의 종은 주님의 대행자로 나섰기 때문에 주의 이름으로 능력이 오게 된 것은 주의 손에 붙들린 인격이기 때문이다. 천하에 제일 강한 자는 주의 능력의 손에 붙들린 종이라고 본다. 왜냐하면 사도 바울을 대적하던 로마의 정권과 모든 교권은 다 무너졌지만, 사도 바울이 능력을 받아 세운 기독교는 세계적인 종교가 되는 동시에 세계 통일의 완전한 평화 왕국이 이루어질 것이다.
결 론
가장 인생 중에 복된 자는 배워지는 인격으로써 날마다 진보하는 성도라고 본다. 왜냐하면 이 성도의 주권으로만이 세계 인류는 가장 행복된 세계가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인간이 볼 때는 작은 일 같으나 제일 큰 일이 날마다 새로이 배워지는 종의 인격이라고 본다. 아무리 세계적인 강대국이라는 나라도 아무런 열매 없는 허수아비같이 되었지만, 배워지는 인격을 가진 바울은 지금에 와서 큰 열매를 이루게 된 것이다.
71년 4월호 <설교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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