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브리서 예수는 더 좋은 언약의 보증 - 히7:18~2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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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약이라는 것은 예언적인 언약도 있고 실천적인 언약도 있다. 구약 시대의 지성소에 드리는 대제사장의 직분은 예언적인 언약의 증거라면, 신약 시대의 이루어진 언약이 영원한 속죄를 이룬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언약을 실천하는 일의 보증이 된다.
예를 든다면 구약 시대는 죄를 지으면 용서 없이 죽인다는 율법을 기준하여 세워진 언약이며 언약의 증거요, 신약의 은혜는 얼마든지 살려준다는 언약의 보증이다.
다시 말하면 첫째는 공의를 목적 둔 것이라면 둘째는 사랑을 목적한 것이다. 죄를 지으면 용서 없이 죽인다는 언약을 받은 민족도 복되다 하였거든 얼마든지 살려준다는 언약의 보증이 되시는 예수를 믿는 자에게 그 축복이야말로 감히 인간으로 상상할 수 없는 일이다.
이제 더 좋은 언약의 보증이 되시는 예수님에 대하여 본문을 통하여 다음과 같이 말한다.
1. 계명은 무익하므로 폐하고 좋은 소망이 생기게 함 (18~19)
(히7:18) 전엣 계명이 연약하며 무익하므로 폐하고
(히7:19) (율법은 아무 것도 온전케 못할찌라) 이에 더 좋은 소망이 생기니 이것으로 우리가 하나님께 가까이 가느니라
하나님께서 계명으로만 행하는 하나님이라면 그 하나님은 무능력한 하나님으로 보게 된다. 예를 든다면 어떠한 사람이 물에 빠졌는데 물 밖에 있는 사람이 그 사람을 보고 정신을 차리라, 여기로 나오너라 하는 말을 해보았던들 그 사람을 물에서 건져낼 능력이 없다면 정신을 차려라 하는 말이나 물에서 나오라 하는 말은 하등 필요가 없는 말이 될 것이다. 이와 같이 죄악의 물결에 휩쓸려 들어간 인생들을 향하여 정신을 차려라, 죄에서 나오너라 하더라도 그 인생을 끌어내어 올 능력이 하나님께 없다면 그 계명은 아무런 유익이 없을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무익한 법은 폐지하고 좋은 소망을 인생에게 준 것이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계명을 가르친 것은 하나님의 공의를 알도록 선포한 것뿐이요 그 계명을 인간이 행할 수 있다는 조건은 아니었다. 하나님께서 인간이 행할 수 없어도 하나님은 인간을 구원하는 법을 그리스도를 통하여 행하기 위한 과정에서 예언적인 증거를 보여준 것뿐이다. 인간이 행함으로 된다는 것은 소망이 될 수 없고 인간이 행할 수 없어도 하나님은 행함으로써 인간을 구원해준다는 것이 소망인 것이다.
다시 말하면 물에 빠진 사람이 자기 힘으로 도저히 나올 수 없으나 다른 사람이 구원선을 타고 물에 빠진 자를 끌어 배에다 올려놓듯이, 그리스도께서 완전한 교회를 구원선과 같이 세운 것은 그리스도께서 단번에 영원한 속죄제를 드리시고 부활하셔서 승천하여 성신을 내려보내므로 죽은 영들이 살아나는 교회가 이루어질 때에 이루어진 교회에서 전도하는 목적은 누구든지 이루어진 교회에 나와서 은혜를 받으라는 것이다. 누구나 믿음으로 교회에 들어올 때에 다 같이 하나님을 가까이할 수 있는 사람이 되는 것이다.
2. 맹세하시고 뉘우치지 아니하심 (20~21)
(히7:20) 또 예수께서 제사장 된 것은 맹세 없이 된 것이 아니니
(히7:21) (저희는 맹세 없이 제사장이 되었으되 오직 예수는 자기에게 말씀하신 자로 말미암아 맹세로 되신 것이라 주께서 맹세하시고 뉘우치지 아니하시리니 네가 영원히 제사장이라 하셨도다)
하나님께서 맹세를 세우되 아브라함에게는 “네 씨로 말미암아 모든 족속이 복을 받으리라”고 하는 맹세를 세웠고(창22:16~18), 그리스도의 피로 세워진 맹세는 완전한 속죄제를 완성하시고 누구든지 믿으면 이루어준다는 맹세이니 이 맹세로만이 완전이라는 것을 이루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먼저 맹세는 아들을 보내서 만민의 죄를 위하여 영원한 속죄가 되게 한다는 것을 목적했지만, 은혜 시대는 영원한 속죄를 이루었으니 이 언약의 피를 믿으면 무조건 구원한다는 맹세이다.
3. 항상 살아서 간구하시므로 (22~25)
(히7:22) 이와 같이 예수는 더 좋은 언약의 보증이 되셨느니라
(히7:23) 저희 제사장 된 자의 수효가 많은 것은 죽음을 인하여 항상 있지 못함이로되
(히7:24) 예수는 영원히 계시므로 그 제사 직분도 갈리지 아니하나니
(히7:25) 그러므로 자기를 힘입어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들을 온전히 구원하실 수 있으니 이는 그가 항상 살아서 저희를 위하여 간구하심이니라
만일 그리스도께서 영원한 속죄를 이루었다 하여도 항상 살아서 저희를 위하여 간구하심이 없다면 보증적인 역사가 될 수 없다. 예를 든다면 어떤 사람이 보증을 서고도 책임을 할 능이 없어서 활동을 못한다면 그 보증은 무효가 될 것이다. 그러나 그리스도께서는 영원한 속죄를 완성하시고 맹세를 세운 동시에 그 맹세대로 실천하기 위하여 항상 택한 자를 위해 간구하는 기도가 있으므로 택한 사람에게 예정대로 모든 것을 다 이루시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속죄는 물에서 건져주는 역사라면, 간구하는 기도는 물에서 건져낸 사람을 완전하게 만들어서 완전한 일을 하도록 해주는 거와 같은 것이다. 사람이라는 것은 보증을 서고도 그대로 못하는 수가 있지만, 우리의 보증이 되신 예수님은 언약의 말씀대로 몽땅 다 행하시는 보증이시다. 가장 완전한 일은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보증적인 인격을 가진 그리스도를 통하여 이루어지는 일이다.
결 론
천하를 주고도 바꿀 수 없는 것은 그리스도께서 보증을 서주는 신앙이라고 보게 된다. 완전한 계약서가 되는 하나님의 말씀에 완전한 언약의 속죄의 피가 이미 우리를 살려준 일이니 보증적인 그리스도의 역사로만이 앞으로 오는 모든 난제는 해결될 것이다.
71년 4월호 <설교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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