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계시록 참는 종에게 나타난 계시 - 계1:9~2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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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께서 당신의 사랑하는 종을 들어서 역사할 때에 참지 않고는 도저히 일할 수 없는 환경에 몰아넣고 끝까지 참고 나가는 종을 인정하는 동시에 보호하고, 보호하는 동시에 그 종에게 하나님의 숨은 비밀이 무엇이라는 것을 세계가 다 알도록 글을 기록하게 한 것을 선지서와 계시록이라는 것이다.
하나님은 언제나 큰 계시를 보일 때는 무서운 환난이 있게 하는 동시에 그때에 온 거와 같이 앞으로도 오는 환난을 보여주었고 그때에 참는 종이 환난을 이기고 나간 거와 같이 앞으로도 끝까지 참는 종이라야 환난에서 남을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 계시가 즉 예언서라는 것이다.
이제 참는 종에게 나타나는 계시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본문을 들어서 말한다.
1. 환난을 통과한 요한 (9상반절)
(계1:9) 나 요한은 너희 형제요 예수의 환난과 나라와 참음에 동참하는 자라 하나님의 말씀과 예수의 증거를 인하여 밧모라 하는 섬에 있었더니
환난이라는 것은 하나님의 의를 이루기 위한 환난이다. 인간이 볼 때는 환난이 불행스러운 일 같으나 이 환난이 있음으로써 의로운 역사라는 것은 있게 되는 것이다. 예수님도 대중에게 환영을 받을 때가 의를 이루는 완전 역사가 아니고, 대중이 일어나서 예수님을 욕하고 때리고 십자가에 못 박는 환난이 옴으로써 하나님의 의는 십자가에서 완성된 것이다. 의라는 것은 남을 살리기 위하여 환난, 고통을 이기고 나간다는 것이 의이기 때문이다. 하나님도 인간을 살리고자 할 때에 아들에게 무서운 환난을 통과시키면서 의로운 일을 이루도록 하시었고 사도들도 무서운 환난을 통과시키면서 의로운 일을 하게 했던 것이다.
그러므로 사도 요한은 주님께서 환난을 통과할 때에 십자가 앞에서 인정을 받은 사람이요, 네로 황제의 무서운 박해가 와서 그 환난에서 모든 종들은 다 쓰러지고 말았지만 사도 요한은 하나님의 보호로 그 환난을 통과할 때에 그 영계는 최고도로 높은 단계를 이루게 되었다. 순교자는 죽어서 왕권을 받게 되는 것이요, 환난에서 남은 자가 된 자는 살아서 왕권을 받는 영계에 들어가게 된다. 만일 사도 요한이 환난에서 쓰러지고 말았다면 완전 계시를 볼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환난에서 쓰러지지 않고 남은 자가 될 때에 완전 계시를 하나님께 받는 단계에 이르게 된 것이다. 은사는 무조건 거저 주는 은사요, 완전 계시를 보는 것은 특수한 계시이니 이것은 하나님 앞에 완전히 인정을 받는 단계에서 시대적인 사명적 계시를 보게 되었던 것이다.
2. 밧모 섬에 있는 요한 (9하반절)
(계1:9) 나 요한은 너희 형제요 예수의 환난과 나라와 참음에 동참하는 자라 하나님의 말씀과 예수의 증거를 인하여 밧모라 하는 섬에 있었더니
인간이 볼 때는 환난을 통과한 요한이 쓸쓸한 밧모 섬에 갇혔다는 것은 오히려 순교를 한 자보다 오히려 괴로운 자리라고 볼 수 있다. 그러므로 그 자리가 사도 요한으로서는 마땅히 가야 할 곳이므로 하나님은 밧모 섬으로 요한을 인도한 것이다. 하나님의 인도라는 것은 직접으로 인도하는 것만이 아니고 원수를 들어서 쫓아내고 끌고 가는 것도 결국은 하나님의 인도가 된다. 왜냐하면 원수의 마음까지도 하나님이 주관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참는 종은 무엇이나 다 감사할 일이 되는 것이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신이 항상 같이하기 때문이다.
어찌하여 하나님은 동서양에 경계가 되는 밧모 섬으로 인도했느냐 하는 것은 다음과 같은 의의가 있다.
첫째는, 마지막 환난과 재앙의 날에 될 일을 보여주기 위하여 밧모 섬으로 인도한 것이다. 마지막 환난은 중동을 중심하여 일어나되 지중해를 둘러싼 지경에서 있을 것을 보여주는 묵시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앞으로 될 일을 보여줄 때에 반드시 그 위치와 경계를 미리 정한 뜻을 요한에게 보여주기 위하여 지중해 밧모 섬으로 인도한 것이다. 땅 위에서 마땅히 될 일을 보여주는 것은 영적이 아니요, 직접 실지적으로 지상에서 이루어지는 일이 되기 때문에 지상에 위치를 밧모 섬으로 정했던 것이다.
둘째에, 지금 국제 정세를 볼 때에 과학적인 인류 전멸의 전쟁은 지중해를 중심하여 있을 것은 과학 발전의 근거지가 지중해를 중심한 데서 시작되었기 때문이다. 계시록은 인간 과학 발전으로 인류 전멸의 전쟁은 지중해를 중심하여 있는 것을 보여주었던 것이다.
셋째에, 어느 선지나 다 지중해를 중심하여 묵시를 보게 되었던 것이다. 모든 선지는 하나같이 중동을 중심하여 북방으로 환난이 올 것을 보여주었고 종말의 역사는 동방 땅끝 바다 옆에서 일어날 것을 보여주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계시의 비밀은 분명히 아시아를 중심하여 올 환난과 아시아를 중심하여 일어날 기독교 종말의 완전 역사를 보여주었다고 보게 된다.
3. 주의 날에 계시를 봄 (10)
(계1:10) 주의 날에 내가 성령에 감동하여 내 뒤에서 나는 나팔 소리 같은 큰 음성을 들으니
어찌하여 주의 날에 계시를 보았느냐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말한다. 주의 날은 환난을 통과한 주께서 승전한 날이라고 보게 된다. 우리는 주님께서 승리한 날이 없다면 세계 인류는 도저히 마귀의 권세를 이기고 벗어날 수가 없을 것이로되, 주께서 이날에 승리하고 부활하셨으므로 마귀 권세 아래서 죽게 된 인간들은 사망의 권세를 벗어난 해방이라는 가장 복된 일을 보게 된 것이다.
첫째 아담이 마귀에게 졌으므로 아담은 축복을 빼앗겼고, 둘째 아담 예수님은 승리하셨으므로 잃었던 하나님의 축복을 다시 인간에게 주게 된 일이 그리스도의 승리의 부활을 통하여 있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주의 날에 완전 승리의 평화 왕국이 올 계시를 환난을 통과한 요한에게 보여준 것이다.
4. 두려운 주님으로 나타나심 (11~17)
(계1:11) 가로되 너 보는 것을 책에 써서 에베소, 서머나, 버가모, 두아디라, 사데, 빌라델비아, 라오디게아 일곱 교회에 보내라 하시기로
(계1:12) 몸을 돌이켜 나더러 말한 음성을 알아 보려고 하여 돌이킬 때에 일곱 금 촛대를 보았는데
(계1:13) 촛대 사이에 인자 같은 이가 발에 끌리는 옷을 입고 가슴에 금띠를 띠고
(계1:14) 그 머리와 털의 희기가 흰 양털 같고 눈 같으며 그의 눈은 불꽃 같고
(계1:15) 그의 발은 풀무에 단련한 빛난 주석 같고 그의 음성은 많은 물 소리와 같으며
(계1:16) 그 오른손에 일곱 별이 있고 그 입에서 좌우에 날선 검이 나오고 그 얼굴은 해가 힘있게 비취는것 같더라
(계1:17) 내가 볼때에 그 발앞에 엎드러져 죽은 자 같이 되매 그가 오른손을 내게 얹고 가라사대 두려워 말라 나는 처음이요 나중이니
모든 제자들이 사복음과 편지서를 쓴 것은 두려운 주님으로 나타난 역사를 말한 것이 아니고 나사렛 목수의 한 사람으로 나타나서 가르친 일, 이적을 행한 일, 십자가에 죽은 일, 부활한 일, 이것을 기록한 것이다. 그러므로 이 글은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이요, 우리의 구주라는 것을 믿게 하기 위한 전도문이라고 본다.
그러나 두려운 주님으로 나타난 계시는 진노의 날에 용서 없는 재앙이 올 때에 하나님의 종은 어떠한 종이 되어야 하며, 교회는 어떠한 교회가 되어야 하며, 전할 복음은 어떠한 복음이라는 것을 보여준 것이 계시록의 목적이다.
5. 촛대 교회 사자에게 알려주는 비밀 (18~20)
(계1:18) 곧 산 자라 내가 전에 죽었었노라 볼찌어다 이제 세세토록 살아 있어 사망과 음부의 열쇠를 가졌노니
(계1:19) 그러므로 네 본 것과 이제 있는 일과 장차 될 일을 기록하라
(계1:20) 네 본 것은 내 오른손에 일곱 별의 비밀과 일곱 금 촛대라 일곱 별은 일곱 교회의 사자요 일곱 촛대는 일곱 교회니라
십자가의 비밀은 이방의 사도가 되는 바울이 계시를 받아 분명히 알게 되어 기록한 글이다(엡3:1~6). 그러나 계시록은 온 땅이 다 환난 재앙에서 망하게 되더라도 남은 교회가 될 촛대 교회를 지킬 자에게 전할 말씀을 보여준 계시다. 그러므로 진노의 날에 남은 종은 반드시 일곱 교회에 써 보낸 계시록이 아니고는 환난에서 양 떼를 살릴 수 없을 것이다.
결 론
우리는 그리스도께서 끝까지 참고 이긴 십자가로 말미암아 죄에서 구원을 받고 사도 요한이 환난을 통과한 남은 자로서 받은 계시록을 통하여 환난과 재앙에서 영육이 아울러 구원받는 역사가 무엇인지를 알아야 될 것이다.
71년 4월호 <설교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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