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복음 세례요한의 잉태 시의 증거 - 눅1:8~17, 39~44, 요절:17 -
페이지 정보
본문
서 론
세례요한은 잉태 시부터 메시야가 오시는 일을 영접할 준비를 하기 위한 것이라고 천사는 말하였다. 하나님께서 당신의 아들을 세상에 보낼 때에도 앞길을 열어주기 위한 선지를 내세운 것은 메시야 오기를 기다리던 성도들로 메시야를 영접하여 온전한 사도의 직을 받을 사람들을 찾기 위한 목적이었다.
그러므로 잉태 시에 천사가 나타나서 증거한 일이나 모든 이루어진 일은 다음과 같다.
1대지 : 간구한 기도 응답 (8~13)
(눅1:8) 마침 사가랴가 그 반열의 차례대로 제사장의 직무를 하나님 앞에 행할쌔
(눅1:9) 제사장의 전례를 따라 제비를 뽑아 주의 성소에 들어가 분향하고
(눅1:10) 모든 백성은 그 분향하는 시간에 밖에서 기도하더니
(눅1:11) 주의 사자가 저에게 나타나 향단 우편에 선지라
(눅1:12) 사가랴가 보고 놀라며 무서워하니
(눅1:13) 천사가 일러 가로되 사가랴여 무서워 말라 너의 간구함이 들린지라 네 아내 엘리사벳이 네게 아들을 낳아 주리니 그 이름을 요한이라 하라
부친 사가랴가 제사장의 직무를 행하려 주의 성소에 들어가 분향할 때에 주의 천사는 향단 우편에 서서 “너의 기도가 응답되어 네 아내 엘리사벳이 아들을 낳아주리니 이름을 요한이라고 하라” 하였다. 이것은 그들이 아들이 없으므로 하나님께 아들을 간구한 일이 있었는데 응답으로 수태 못 하던 엘리사벳에게 아들을 주신 것이다.
이렇게 되는 것은 제사장족에서 세례요한이 출생하여 마지막 예언자로 나타나되 이날까지 양을 드리던 제사는 메시야의 어린 양의 피로 완전히 끝을 맺는다는 것을 증거하기 위하여 성전에서 제사하는 사가랴에게 천사는 나타나 지시하신 것이다. 그러므로 세례요한은 “세상 죄를 지고 가는 어린 양을 보라”고 외쳤던 것이다.
요한이라는 이름은 둘로 되어있는데 하나는 세례요한이니 메시야를 영접하라는 선지가 되었고, 사도 요한은 재림의 주를 영접하라는 예언적인 계시록을 받았다. 그러므로 요한이라는 이름하에서 두 선지 사명이 나타났다.
2대지 : 주 앞에 큰 자가 됨 (14~17)
(눅1:14) 너도 기뻐하고 즐거워할 것이요 많은 사람도 그의 남을 기뻐하리니
(눅1:15) 이는 저가 주 앞에 큰 자가 되며 포도주나 소주를 마시지 아니하며 모태로부터 성령의 충만함을 입어
(눅1:16) 이스라엘 자손을 주 곧 저희 하나님께로 많이 돌아오게 하겠음이니라
(눅1:17) 저가 또 엘리야의 심령과 능력으로 주 앞에 앞서 가서 아비의 마음을 자식에게, 거스리는 자를 의인의 슬기에 돌아오게 하고 주를 위하여 세운 백성을 예비하리라
모든 선지 중에도 요한은 메시야를 직접 영접하도록 하는 선지이니 예수님께 직접 세례를 베푼 자요, 율법 시대의 끝을 맺는 선지였다. 이는 모태로부터 성신의 충만함을 입었다고 한 것은 생령의 사람으로 잉태되어 성령의 역사를 힘입어 세상에 나되 예수와 같이 성령으로 잉태된 몸이 아니고 그 영이 성령으로 말미암아 선지의 영으로 역사를 마치는 완전한 영으로 났다고 본다. 자범죄가 없는 자이며 많은 사람을 준비시키는 사람으로 날 때에 성신 역사 시대가 오기 전에 회개를 외친 것은 메시야를 영접할 신앙을 가진 자들이 영적으로 부패된 교계에 나와서 너희가 기다리던 메시야가 왔는데 모든 부족을 회개하고 메시야를 영접하라고 한 것이다.
중생의 역사가 있기 전에 회개를 외친 것은 메시야를 기다리던 이스라엘에게 깨우쳐주는 역사이다. 그러므로 율법 시대의 선지로서는 큰 자라는 것이다. 그러나 은혜 시대의 종과는 다르다. 왜냐하면 세례요한은 그리스도의 부활, 승천, 성신 강림이 되기 전 시대의 사람이니 회개를 외쳐도 베드로같이 큰 역사는 나리지 않았던 것이다. 왜냐하면 성신이 나리는 때가 아니고 메시야를 기다리던 자에게 영접하도록금 하는 역사이니 이 역사로 말미암아 메시야를 영접하는 자들이 나오게 되므로 열두 사도가 이루어진 것이다.
3대지 : 복중에서 뛰노는 증거가 있음 (39~44)
(눅1:39) 이 때에 마리아가 일어나 빨리 산중에 가서 유대 한 동네에 이르러
(눅1:40) 사가랴의 집에 들어가 엘리사벳에게 문안하니
(눅1:41) 엘리사벳이 마리아의 문안함을 들으매 아이가 복중에서 뛰노는지라 엘리사벳이 성령의 충만함을 입어
(눅1:42) 큰 소리로 불러 가로되 여자 중에 네가 복이 있으며 네 태중의 아이도 복이 있도다
(눅1:43) 내 주의 모친이 내게 나아오니 이 어찌 된 일인고
(눅1:44) 보라 네 문안하는 소리가 내 귀에 들릴 때에 아이가 내 복중에서 기쁨으로 뛰놀았도다
예수의 모친 마리아가 천사의 지시를 받고 엘리사벳을 찾아갔을 때 6개월 된 태중에 있는 요한이가 기뻐 뛰노는 증거를 보인 것은 모태로부터 성신이 함께하는 증거이다. 이렇게 된 것은 마리아에게 더 확신을 주게 되었고 엘리사벳도 더 큰 확신을 갖게 된 것은 사가랴에게 천사의 지시가 있은 것이나 마리아에게 지시가 있은 것이 꼭 같은 동시에 복중에 있는 아이가 기뻐 뛸 때에 분명히 마리아 몸에는 메시야가 잉태되고 엘리사벳의 몸에는 메시야를 영접할 준비를 위한 선지가 잉태된 것을 깨닫게 되었다.
하나님은 언제나 확실한 증거를 주지 않고는 역사하지 않는 것이니 예수님은 분명히 메시야라는 것을 증거하기 위한 세례요한은 잉태할 때부터 확실한 증거를 보여준 것이다.
결 론
세례요한의 증거는 메시야를 영접할 사람들을 회개시키기 위한 선지로 났으니만큼 예수는 완전한 메시야라는 것을 알리기 위하여 이 일에 증인이 되는 세례요한은 잉태될 때부터 확실한 증거를 보여준 것은 요한의 증거를 듣고 메시야를 영접할 이스라엘에게 확실한 증거를 보여주기 위하여 양을 잡아 제사드리는 제단에서도 증거가 있었고 메시야를 잉태하는 마리아에게도 큰 증거를 알려주었던 것이다.
71년 1월호 <장년 공과편 - 세례요한의 증거>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