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복음 산 믿음의 양심 - 눅17:1~1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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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이라는 것은 도덕 아래 속한 것도 아니요, 어떤 의식이나 법도에 속한 것도 아니요, 산 믿음이라는 것은 그 양심에 속한 것이다. 믿음이라는 것은 사람을 중심한 것보다도 하나님을 향하여 나가는 양심의 활동이 있어야 한다. 아무리 사람에게 자기 옳은 것을 나타낸다 하여도 형제를 실족케 하거나 용서치 않는 것이 있다면 그 믿음은 아무런 열매를 나타낼 수 없고, 오히려 하나님께서 그 마음을 기뻐하지 않으므로 하나님 앞에 책망을 받게 되는 것이다.
믿음이라는 것은 어떠한 양심에서 움직여야 된다는 것을 본문으로 증거한다.
1. 형제를 실족케 하는 일이 있을까 조심하는 일이 있어야 한다 (1~3)
(눅17:1)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실족케 하는 것이 없을 수는 없으나 있게 하는 자에게는 화로다
(눅17:2) 저가 이 작은 자 중에 하나를 실족케 할찐대 차라리 연자맷돌을 그 목에 매이우고 바다에 던지우는 것이 나으리라
(눅17:3) 너희는 스스로 조심하라 만일 네 형제가 죄를 범하거든 경계하고 회개하거든 용서하라
하나님께서는 모든 자의 생명을 하나같이 사랑하므로 남을 실족케 하는 일이 있다면 큰 화가 오게 되는 것은 하나님과 대적이 되는 행동이기 때문이다. 사람은 완전한 사람이 없는 것이로되 형제를 실족케 하는 일은 없어야 할 것이다. 우리는 항상 조심해서 형제를 아끼는 마음이 있어야 한다. 진리가 탈선된 길로 가지 않은 형제가 아무리 실수가 있다 하여도 그 형제를 실족지 않도록 붙들어 주는 일이 있어야 할 것이다.
나의 체험은 형제가 아무리 실수가 있고 나를 괴롭히는 일이 있다 하여도 그 형제를 아끼는 마음으로 붙들어 주고 일으켜 주는 일을 하고자 할 때에 내가 구하지 않아도 뜻밖에 큰 은혜가 오는 체험을 많이 받을 때에 하나님께서 가장 기뻐하는 일은 남을 실족지 않도록 아끼는 사랑으로 대해 주는 것을 하나님이 기뻐하신다는 것을 깨달았다. 아무리 형제가 나를 억울케 하여도 같이 불평을 두지 않고 그 형제가 복을 받게 되기를 바라는 마음이 있다면 항상 하늘로부터 강한 은혜가 나리는 것을 체험하게 될 것이다.
2. 형제를 얼마든지 용서하는 마음이 있어야 한다 (4)
(눅17:4) 만일 하루 일곱번이라도 네게 죄를 얻고 일곱번 네게 돌아와 내가 회개하노라 하거든 너는 용서하라 하시더라
우리는 주님 앞에 용서를 받는 신앙 양심에서 형제의 죄를 너그러이 용서하는 마음이 없다면 십자가의 사랑의 대적이 되는 일이니, 하루에 일흔 번씩 일곱 번까지라도 용서하는 것이 있어야 한다. 회개치 않은 자를 용납한다는 것은 불의와 동참하는 일이 되지만, 회개하는 자를 용서하지 않는다는 것도 큰 죄를 범하는 일이 된다(마18:35).
우리는 사람을 대하는 것은 도덕에 속한 양심도 아니요 율법 아래 있는 양심도 아니니 죄를 너그러이 용서받은 양심에서 남을 너그러이 용서하는 것은 “내가 너를 사랑한 것같이 서로 사랑하라”는 주님의 계명을 지키는 일이니 누구든지 형제의 죄를 용서할 때에 십자가에 속한 사람이 되고, 형제의 죄를 용서치 않을 적에 십자가의 대적이 되는 사람이다. 산 믿음의 양심이라는 것은 항상 그리스도의 사랑의 불이 마음에 있는 믿음이다.
3. 항상 자기가 하는 일에 부족감이 있어야 한다 (5~10)
(눅17:5) 사도들이 주께 여짜오되 우리에게 믿음을 더하소서 하니
(눅17:6) 주께서 가라사대 너희에게 겨자씨 한알만한 믿음이 있었더면 이 뽕나무더러 뿌리가 뽑혀 바다에 심기우라 하였을 것이요 그것이 너희에게 순종하였으리라
(눅17:7) 너희 중에 뉘게 밭을 갈거나 양을 치거나 하는 종이 있어 밭에서 돌아 오면 저더러 곧 와 앉아서 먹으라 할 자가 있느냐
(눅17:8) 도리어 저더러 내 먹을 것을 예비하고 띠를 띠고 나의 먹고 마시는 동안에 수종들고 너는 그 후에 먹고 마시라 하지 않겠느냐
(눅17:9) 명한대로 하였다고 종에게 사례하겠느냐
(눅17:10) 이와 같이 너희도 명령 받은 것을 다 행한 후에 이르기를 우리는 무익한 종이라 우리의 하여야 할 일을 한것 뿐이라 할찌니라
누구든지 그리스도를 믿는 산 믿음의 양심을 가진 자는 항상 자기가 수고할수록 자기 하는 일에 부족감을 깨닫는 마음이 있어야 될 것이다. 주님께서 나를 사랑하는 그 사랑을 생각할 때에 밤낮으로 수고하여도 항상 자기는 아무것도 한 일이 없다고 생각나게 된다. 만일 어떤 사람이 주님의 일을 하고 대접을 받고자 하는 마음이 있다면 이것은 산 믿음의 양심이라고 할 수 없다. 왜냐하면 자기를 위하는 일이 되기 때문이다.
우리는 맡은 일에 충성을 다해 보려고 할 때에 일을 할수록 점점 나는 아무런 일도 한 것이 없다는 생각이 나는 것은 점점 하나님의 은총을 받게 될 때에 그 은혜를 보답할 길이 없다는 마음이 점점 많아지기 때문이다. 누구든지 작은 일에 충성을 다할 것뿐이라는 마음을 가지면 주님께서 가장 큰일을 할 수 있는 믿음을 더해 주시기를 기뻐하신다.
결 론
기독교 신앙 양심이라는 것은 하나님께로 온 사랑을 받은 자리에서 깨끗한 양심을 가지게 되는 것이니 그 양심 속에는 아무것도 자랑할 것 없고, 원망할 것도 없고, 항상 그 사랑을 남에게 주고픈 마음밖엔 있을 수 없다.
72년 9월호 <설교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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