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을 한다는 열심보다는 일을 바로 아는 지식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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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라는 것은 무엇보다도 열심이라는 것이 자동적으로 있게 된다. 죄를 짓는 자도 열심이 있고, 의를 행하는 자도 열심이 있다. 이제 우리는 일을 한다는 열심보다는 그 일을 바로 아는 지식이 필요하다는 데 대하여 다음과 같이 알아야 할 것이다.
1) 일할 수 있는 힘의 원동력이 어디에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어떤 사람이 일꾼을 부릴 때에 밥을 많이 먹으라고 권하면서 밥이 일을 한다고 하였다고 한다. 그때에 그 일하는 사람은 주인이 주는 밥을 먹지 않고 보자기에 싸서 나무에 높이 달아놓았다. 일꾼은 일을 하지 않고 가만히 드러누워서 그 밥만 바라보고 있었다. 그때에 주인이 와서 일꾼에게 말하기를 어찌하여 일은 하지 않고 가만히 드러누워 있느냐고 하였다. 일꾼이 대답하기를 주인님이 밥이 일한다고 하기에 밥이 일하나 보려고 밥을 싸서 높이 달아놓았다고 한다면 그 주인은 대답할 말이 없을 것이다.
일할 수 있는 자격이 있는 자에게 밥이라는 것은 일할 수 있도록 효과를 주게 된다. 우리는 사람이 일할 수 있는 힘은 밥에 있지 않고, 그 힘이 대자연을 창조하신 조물주 하나님께로부터 온다는 것을 먼저 알아야 한다.
오늘에 인간들이 열심히 일하고 있지만 밥을 위해서 일하는 열심이 된다면 아무런 가치가 없는 것이 될 것이다. 일할 수 있는 힘이 하나님께로부터 와야 한다는 지식을 가지고 하나님께 힘을 구할 때에 초자연적인 힘을 받게 된다. 그러므로 이 힘을 받은 자로서 열심히 일한다면 일용할 양식을 위하여 열심을 내지 않아도 필연적인 결과로 이루어진다는 것을 체험하게 되는 것이다.
오늘날 아무리 인간들이 생산 확장을 위하여 열심으로 일한다 하여도 초인간적인 힘의 원동력이 어디 있다는 것을 모른다면 그 열심이라는 것은 오히려 후회막심을 이룰 수도 있을 것이다.
2) 일을 하고 난 결과가 어떻게 된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열심으로 자동차를 운전하는 사람이 그 길로 가면 마지막이 어떻게 되는 길이라는 것을 모르고 있다면 그 열심은 큰 불행을 가져올 수도 있을 것이다. 이와 같이 우리 인간들은 무슨 일을 하든지 그 일을 해서 종말이 어떻게 된다는 것을 합법적으로 아는 지식이 있어야 된다.
오늘날 인간들은 무슨 일이든지 우선 자기에게 유익이 된다면 생명을 아끼지 않고 싸우는 일까지 하고 있다고 본다. 그러나 이것은 짐승이 배가 고플 때에 금시 배를 채우기 위하여 싸우는 것과 같다. 지금은 자기에게 손해가 있다 하여도 손해를 본 결과가 어떻게 될 것이며, 지금은 자기에게 유익이 있다 하여도 유익을 본 결과가 어떻게 될 것이라는 것을 분명히 아는 지식이 있어야 할 것이다. 이 지식이 없다면 일한다는 열심만 가지고는 아무런 가치를 발휘할 수가 없다. 그런데 우리가 이 지식을 완전히 가지게 되려면 하나님의 지식이 풍성해야만 되는 것이다.
가장 비극은 종교인들이 열심이 있다 하여도 진리의 완전한 지식이 없이 열심으로 기도하고 열심으로 연보하고 열심으로 봉사하다가 아무런 열매를 맺지 못하고 쓰러지는 일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러므로 이스라엘 말기에 모든 선지를 통하여 하나님께서 경고의 말씀을 주실 때에 너희의 천천의 수양과 하수 같은 기름이 필요가 없고, 아무리 아들을 희생했다 하여도 필요가 없고, 오직 완전한 지혜를 받아야만 된다고 하셨던 것이다. 종교의 열심이라는 것은 종교적인 진리의 완전한 지식이 없이는 아무런 필요가 없다.
3) 큰 것을 바라고 열심을 내는 것보다는 작은 일을 바로 할 수 있는 지식을 먼저 찾아야 한다.
예를 든다면, 아무리 상공으로 날아가는 비행기라도 가장 작은 못 하나가 잘못되면 비행기는 추락되어 파괴되는 것과 같다. 우리 신앙생활이라는 것은 가장 작은 절수 하나가 잘못될 때에 그 신앙은 독수리같이 올라갈 힘을 받지 못하게 되는 것이다. 왜냐하면 초인간적인 힘을 주시는 하나님께서는 법에 따라서 역사하시는 진리의 신이시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진리의 법에서 잘못된 것을 불법으로 인정하시기 때문에 아무리 선지자 노릇을 하고 권능을 행하고 이적을 행한 사람이라 하여도 말씀대로 심판이 내리는 그날에 도저히 설 수가 없는 것이다. 죄를 용서하는 때에는 그리스도의 속죄의 법을 목적하고 역사했지만, 말씀대로 재앙 심판이 올 때에는 말씀에 의하여 심판을 내리기 때문에 아무리 열심히 일했다 하여도 조금이라도 진리의 법에서 탈선이 있는 자는 불법자로 인정하게 되므로 용서받을 수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일을 한다는 열심보다도 그 일을 바로 아는 지식을 성경에서 바로 가지는 것이 필요하다고 본다. 지식을 따라 열심이 온다는 것은 열매가 있을 것이로되, 열심을 따라 피동을 받는다는 것은 아무런 효과를 이루지 못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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