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생활의 공적과 사적에 대하여 구체적인 설명을 듣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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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 신앙생활이라는 것은 공적, 사적의 생활이 합리화될 때에 이것을 정상적인 신앙이라고 봅니다. 예를 든다면 사람의 몸이 외형적인 활동을 하는 것은 공적이라면 그 몸의 모든 지체가 보이지 않는 힘을 보급하고 있는 활동은 항상 자나 깨나 쉬지 않고 있어야 되는 것같이 신앙생활에도 공적인 활동은 유형적인 것이요, 사적인 생활은 무형적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이제 신앙생활의 공적과 사적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말할 수 있습니다.
1. 공적인 활동
공적이라는 것은 자기 하나를 위한 문제가 아니요, 대중을 위한 문제입니다. 예배에도 공적 예배가 있고, 기도에도 공적 기도가 있고, 전도에도 공적 전도가 있습니다.
아무리 신자가 믿음이 있다 하여도 공적 예배를 등한히 한다면 공적으로 범하는 죄가 될 것입니다. 왜냐 할 때 하나님의 교회를 멸시하는 죄가 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교회라는 것은 개인 신앙을 위해서보다도 약한 자를 붙들어주며, 모르는 자를 깨우쳐주며, 피곤한 자를 소성케 하기 위한 하나님의 일이니 이 일을 등한시하고 믿음이 있다는 자들이 자기 믿음 하나를 목적하고 나는 개인으로도 신앙을 얼마든지 보존한다고 하면 이것은 벌써 신앙 양심을 떠난 자라고 봅니다.
왜냐하면 자기도 예수를 모르고 믿음을 모르던 사람이 교회에 나가서 은혜를 받고 이제 와서 교회의 공적 예배는 필요가 없다고 하면 마치 학교에 가서 공부를 한 학생이 나는 배웠으니 학교가 필요 없다고 하는 식이니 이러한 자라면 공적으로 죄를 범하는 행동이라고 봅니다.
그러므로 신앙생활에는 공적 예배를 존중시하는 것이 있어야만 완전한 열매를 맺게 됩니다. 하나님은 교회를 통하여 역사하기 때문입니다. 사도들이 큰 역사를 받을 때도 공적으로 한곳에 모여 합심하여 기도할 때 큰 성신의 권능이 내렸던 것입니다.
공적 기도의 큰 관심을 두어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의 큰 역사는 공적 기도에서 일어나는 것입니다. 공적 기도라는 것은 개인 사정을 위한 문제보다도 국가적이나 민족적이나 교회적이나 모든 문제를 내게 관한 문제로 알고 기도하는 것인데 이 기도를 하는 일에 전력을 둘 때에 하나님께서 공적인 대중의 생명을 살려주는 역사를 나리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도 바울도 디모데에게 공적 기도에 힘쓰는 것이 사명자의 할 일이라는 것을 권했던 것입니다(딤전2:1~3).
누구든지 공적인 기도를 많이 하는 자에게 영계가 속히 올라가는 열매가 있습니다. 자기의 은밀한 죄를 자복하는 기도나 딱한 사정을 고백하는 기도는 소극적인 기도라면 공적으로 대중을 살리기 위하여 하는 기도는 적극적인 기도라고 보게 됩니다. 이러한 사람에게 하나님은 왕권의 축복을 나리는 것입니다.
공적인 전도는 개인을 만나서 하는 전도가 아니고 강단에서 서서 대중을 깨닫도록 가르치는 설교나 또는 전도 강연을 공적 전도라고 합니다. 신앙이라는 것은 공적으로 대중을 회개시키는 설교는 특별한 종에게 있습니다. 베드로가 한 번 설교할 때 삼천 명이 회개하고 중생을 받았다는 것은 역사의 한 페이지를 이루었습니다. 앞으로 말세 증인이 재앙으로 땅을 치고 나가면서 예언을 증거하는 것도 역사적인 한 페이지에 끝을 맺는 전도가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신앙에는 공적 예배, 공적 기도, 공적 전도가 없이는 완전한 왕국을 이루는 역사가 될 수 없습니다.
2. 사적 생활
이것은 신앙 양심에서 하나님을 상대하여 날마다 은밀한 것을 하나님께 보이려고 하는 신앙 양심의 생활입니다. 예를 든다면 큰 나무가 큰 열매를 많이 맺어 공적인 대중에게 도움을 주는 일은 사적인 세포에 들어가서 작게 뻗어나가는 뿌리에서부터 힘을 얻어 큰 열매를 맺는 거와 같이, 신앙생활도 사적으로 은밀한 생활에서 하나님께로 통하는 것이 있는 자라야 공적인 교회에 발전을 가져오게 하는 열매가 있게 될 것입니다.
이제 신앙생활의 사적에 대하여 사적 봉사, 사적 교제, 사적 인내의 생활이 있으므로 큰 발전을 보게 됩니다.
사적 봉사라는 것은 하나님만 알게 숨은 봉사를 하는 일이요, 사적 교제라는 것은 하나님과 나 사이에 소리 없이 교통하는 동시에 성도가 영적으로 교통되는 일입니다. 이것은 도덕이나 법칙이나 어떤 단체를 초월하여 이루어지는 일입니다. 지금 어느 교파를 막론하고 참된 성도에게는 자기도 모르게 영적으로 다 연결되어있다고 봅니다.
또는 사적으로 참고 나가는 힘입니다. 예를 든다면 큰 가옥을 건축할 때에 사방에 기둥을 세우고 모든 것을 그것에 의지하여 집을 지을 때에 모든 짐을 꼭 같이 지고 견디고 있듯이, 교회라는 것은 성도들이 사적 생활에서 오는 모든 시험을 참고 나갈 때에 이것이 교회 전체를 받드는 힘이 될 것입니다.
아무리 교회가 많은 사람이 모인다 하여도 그 사람이 사적 생활에서 참는 신앙이 없다면 이 교회는 아무런 열매 없이 무너질 날이 올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사적 생활에서 참고 나가는 데 의하여 축복을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제자들이 서로 자기의 세력을 높이려 할 때에 지극히 작은 아이에게 행한 것을 내게 행한 거와 같이 갚아줄 것이니 누구든지 작은 일에 충성한 자라야 큰 권세를 받을 것을 가르쳤습니다.
이러므로 사생활에 숨은 봉사, 교제, 인내, 이 세 가지로 말미암아 겨자씨 한 알이 큰 나무가 되듯이 신앙생활에 완전한 열매를 맺게 되므로 하나님의 정하신 뜻이 그 신앙을 통하여 완전한 열매로 나타나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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