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야 하나님의 권고와 제사 문제 - 사66:1~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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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는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는 종교인 동시에 하나님께서 권고하는 사람이 될 때에 그 제사는 열매가 있고 하나님께서 권고하지 않는 사람이 될 때에 그 제사는 오히려 저주를 받는 일이 되는 것이다. 본 장의 말씀은 심판기에 하나님의 권고와 제사 문제를 두고 가르친 말씀이다. 그러면 어떠한 사람을 하나님께서 권고하며 어떠한 사람을 권고하지 않는가 하는 데 대하여 다음과 같이 본문을 들어서 말한다.
1. 하나님께서 권고하시는 자 (1~2)
(사66:1)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되 하늘은 나의 보좌요 땅은 나의 발등상이니 너희가 나를 위하여 무슨 집을 지을꼬 나의 안식할 처소가 어디랴
(사66:2)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나의 손이 이 모든 것을 지어서 다 이루었느니라 무릇 마음이 가난하고 심령에 통회하며 나의 말을 인하여 떠는 자 그 사람은 내가 권고하려니와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백성을 권고하기를 기뻐하시되 무조건 권고하는 것이 아니고 다음과 같은 자라야 권고하신다.
첫째 : 마음이 가난한 자이며,
둘째 : 심령에 통회하는 자이며,
셋째 : 말씀에 떠는 자이다.
이와 같이 하나님께서 창조한 세상에서 하나님의 뜻을 합당치 않게 생각을 하고 자기의 주관을 따라서 일한다면 하나님은 그 사람을 도저히 권고할 수가 없다는 것이다. 오직 자기의 어떤 고집이나 주관을 버리고 자기 마음보다도 대자연을 창조하신 하나님의 뜻만을 순종하는 마음을 가져야 하며, 하나님과 가까이 교통하는 것은 심령이니 조금이라도 마음에 합당치 못한 생각을 가진 것이 없이 자기 부족을 숨기지 않고 하나님만 아는 마음 가운데 지은 죄를 항상 통회할 때에 하나님은 부족이 있다 하여도 그 사람을 권고하는 것이다.
우리가 육의 사람을 대할 때는 마음에 부족이 있다 하여도 그 사람이 내 마음을 보는 것이 아니고 외모를 보기 때문에 사람이 보는 도덕적인 행위로써 대할 수 있다. 그러나 심령을 보시는 하나님 앞에 아무리 도덕적인 행위는 옳다 하여도 마음 가운데 죄가 있다면 하나님은 그 사람을 권고할 수가 없다. 오히려 도덕적인 행위는 부족하다 하여도 심령 통회가 있는 사람은 권고할 것이로되, 도덕적으로 행하는 일이 옳게 보여도 심령으로 하나님을 경외치 않는다면 하나님은 그 사람을 볼 때에 외식하는 자로 보기 때문에 가까이할 수가 없다. 하나님은 진리의 신이시므로 진리를 숨김없이 사람에게 깨닫도록 말씀했는 데도 불구하고 그 말씀을 방심하고 존중히 생각을 하지 않고 떠는 마음이 없다면 말씀대로 준행하시는 하나님께서 그 사람을 권고할 수가 없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인생을 창조할 때에 사람을 완전하게 창조한 것보다도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사람으로 하나님의 권고를 받는 데 있어서는 마음에 아무런 욕망이 없이 하나님의 참되고도 완전한 사랑을 바라보고 항상 마음에 하나님 한 분만으로 만족을 삼는 가난한 마음을 가진 자를 기뻐하시는 것이다. 예를 든다면 공장의 주인이 계획하는 것을 직공이 무시하고 자기의 주관을 내세운다면 그 공장에 혼란을 일으키는 사람이 되고 말 것이다. 누구든지 하나님 말씀을 자기 마음대로 해석을 한다든지 그 말씀대로 순종하는 것보다도 자기 주관을 내세우는 자라면 그 사람의 제사를 받을 수가 없다는 것이다.
2. 하나님께서 권고하시지 않는 자 (3~4)
(사66:3) 소를 잡아 드리는 것은 살인함과 다름이 없고 어린 양으로 제사드리는 것은 개의 목을 꺾음과 다름이 없으며 드리는 예물은 돼지의 피와 다름이 없고 분향하는 것은 우상을 찬송함과 다름이 없이 하는 그들은 자기의 길을 택하며 그들의 마음은 가증한 것을 기뻐한즉
(사66:4) 나도 유혹을 그들에게 택하여 주며 그 무서워하는 것을 그들에게 임하게 하리니 이는 내가 불러도 대답하는 자 없으며 내가 말하여도 그들이 청종하지 않고 오직 나의 목전에 악을 행하며 나의 기뻐하지 아니하는 것을 택하였음이니라 하시니라
하나님 앞에 아무리 제사를 드린다 하여도 그 제사를 가증히 보게 되는 것은,
첫째 : 자기의 길을 택하는 일과,
둘째 : 가증한 것을 기뻐하는 일과,
셋째 : 순종치 않은 일이 있기 때문이다.
이 세 가지가 있는 사람은 제물을 드려도 그 제물을 살인함과 같이, 더러운 개같이, 돼지의 피와 같이 여긴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제물보다도 진리를 기뻐하기 때문이다. 진리의 길보다도 자기의 길을 택한다는 것은 하나님의 진리를 대적하는 사람이요, 하나님의 거룩한 역사보다도 오히려 마귀가 역사하는 그 일을 기뻐한다면 하나님은 그 사람에게 도저히 역사를 나릴 수가 없다.
오늘날 기독교가 성신의 은혜를 받는 것보다도 세상의 오락적인 기쁨을 좋아하고 하나님을 찬송하는 것보다도 오히려 세상 노래를 좋아한다면 하나님은 성신을 부어주는 것보다도 유혹을 그들에게 부어주고 평강보다도 두려워하는 일을 그들에게 주어서 항상 공포 속에서 허덕이는 생활이 있게 하시는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청종치 않을 적에 하나님도 그 예배를 받을 수 없이 되므로 오히려 헛된 예배를 드리다가 심판을 면치 못할 것이다.
우리는 진노의 날에 남은 자가 되려면 하나님께서 기쁘게 받으시는 제사를 드릴 수 있는 생활이 있어야 할 것이다. 종교 부패라는 것은 그 제사를 하나님께서 받지 않을 적에 자동적으로 부패한 교회가 되어 멸망을 자취하는 일이 있게 될 것이다. 하나님께서 가장 미워하는 일은 당신 앞에 제사를 드리면서 당신의 말씀을 청종치 않는 일이요, 하나님께서 가장 기뻐하는 일은 그 말씀을 순종하면서 제사하는 일이 되는 것이다.
결 론
인생이라는 것은 하나님께서 권고하실 때에 모든 일이 하나님의 축복 속에서 이루어지는 것이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권고치 않을 적에 모든 일이 재앙의 날에 그 재앙을 면치 못하는 일이 되므로 아무리 하나님을 공경하고 제사를 드리는 일이 있다 하여도 망하게 될 것을 가르친 것이니, 우리는 하나님의 권고와 제사 문제에 대하여 이 본문에서 깊이 깨달아 헛된 제사를 드리지 않도록 하여야 될 것이다. 오늘날 예배를 보는 사람이 많이 있지만 그 예배를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느냐 하는 것이 큰 문제가 되는 것이니 예배보다도 먼저 하나님의 권고를 받는 인격과 생활이 있어야 할 것이다.
71년 9월호 <설교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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