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야 말씀에 떠는 자의 시련과 축복 - 사66:5~1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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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의 최고의 인격과 축복은 조물주 하나님의 말씀에 떠는 데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할 것이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인생을 창조할 때 완전한 사람으로 창조한 것이 아니고 조물주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면 완전이요, 순종치 않으면 타락이라는 것이니 하나님과 인생과에 연합할 수 있는 것은 말씀에 의하여 연합될 수도 있고 멀리 떠날 수도 있다. 하나님께서는 사랑하는 자에게 말씀을 주시는 것은 하나님의 완전성의 그 뜻을 사람을 통하여 이루시고자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모든 역사라는 것은 사람을 위하여 역사하는 것이니 사람이 없다면 하나님의 역사는 필요가 없고 말씀이 없이는 역사하지 않는 것이니 하나님은 사람을 위하여 역사하되 말씀을 언약으로 세우시고 말씀대로 사람에게 역사해서 사람에게 완전한 인격도 완전한 축복도 주시는 것이다.
이제 말씀에 떠는 자에게 어떠한 시련이 오며 어떠한 축복이 온다는 것을 본문을 통하여 알 수 있다.
1. 시련을 당하게 됨 (5~9)
(사66:5) 여호와의 말씀을 인하여 떠는 자들아 그 말씀을 들을지어다 이르시되 너희 형제가 너희를 미워하며 내 이름을 인하여 너희를 쫓아내며 이르기를 여호와께서는 영광을 나타내사 너희 기쁨을 우리에게 보이시기를 원하노라 하였으나 그들은 수치를 당하리라 하셨느니라
(사66:6) 훤화하는 소리가 성읍에서부터 오며 목소리가 성전에서부터 들리니 이는 여호와께서 그 대적에게 보응하시는 목소리로다
(사66:7) 시온은 구로하기 전에 생산하며 고통을 당하기 전에 남자를 낳았으니
(사66:8) 이러한 일을 들은 자가 누구이며 이러한 일을 본 자가 누구이뇨 나라가 어찌 하루에 생기겠으며 민족이 어찌 순식간에 나겠느냐 그러나 시온은 구로하는 즉시에 그 자민을 순산하였도다
(사66:9)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내가 임산케 하였은즉 해산케 아니하겠느냐 네 하나님이 가라사대 나는 해산케 하는 자인즉 어찌 태를 닫겠느냐 하시니라
이 시련이라는 것은 교회 밖에의 사람을 통하여 오는 것보다도 교회 안 사람들에게 시련이 올 것을 가르쳤다. 어찌하여 교회 안 사람에게 시련을 받게 된다는 이유를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이유 없이 미움을 받게 되는 것이다. 왜냐하면 하나님을 공경한다는 사람 중에서 하나님의 말씀 때문에 큰 혼란이 오는 때에 말씀에 혼란을 일으키는 무리들이 그 마음이 강퍅해지는 것은 말씀대로 역사하는 하나님께서 역사하지 않으시고 오히려 유혹의 영이 들어가 역사하기 때문이다(4).
앞으로 소위 하나님을 공경한다 하는 자들이 하나님 말씀을 혼선되게 가르치는 거짓 선지자들은 말씀을 중심하지 않고 교권 중심, 인물 중심, 인간 문학 중심으로 흐르는 자들이 다수요, 그들은 마음에 사랑이 없으므로 오히려 말씀에 떠는 사람을 미워하고 교회에서 쫓아내면서 하나님의 역사가 있다는 것을 비방하는 무리들이다. 이러한 교회가 될 때에 하나님은 그 교회를 대적으로 여기시고 원수를 갚는 심판을 하되 용서할 수 없는 진노의 재앙으로 벌하시게 되는 것이다.
지금 기독교가 여러 가지 교파로 나뉘어있지만 심판기에는 말씀에 떠는 자와 말씀을 만홀히 아는 자와 한 교회에 있을 수 없이 분열이 될 것을 가르친 것이다. 이날까지는 기독교가 심판기가 아니므로 믿음으로 중생을 받고 다 같이 민족적 국경에 차별 없는 일반적인 은혜를 받았지만, 심판기에는 이사야 성경에 가르친 심판과 새 시대를 가르친 말씀에 의하여 심판하기 때문에 말씀에 떠는 자 외에는 하나님의 권고하심을 받지 못하고 버림을 받게 될 때에 성산의 축복을 받을 사람에게 형제들을 통하여 큰 시련이 오게 될 것을 가르쳤다. 하나님께서 이렇게 하는 것은 쭉정과 알곡을 갈라서 심판하기 위한 목적이다.
이렇게 되므로 말씀에 떠는 시온의 자녀는 해산의 수고를 하지 않고는 도저히 자기의 신앙을 지켜나갈 수는 없고 또는 완전한 축복을 받을 교회를 이룰 수도 없게 될 것이다. 해산의 수고를 다하는 목적은 말씀에 가감 없이 믿고 순종해나가기 위한 데서 받게 되는 시련이다.
2. 축복을 받게 됨 (10~14)
(사66:10) 예루살렘을 사랑하는 자여 다 그와 함께 기뻐하라 다 그와 함께 즐거워하라 그를 위하여 슬퍼하는 자여 다 그의 기쁨을 인하여 그와 함께 기뻐하라
(사66:11) 너희가 젖을 빠는 것 같이 그 위로하는 품에서 만족하겠고 젖을 넉넉히 빤 것 같이 그 영광의 풍성함을 인하여 즐거워하리라
(사66:12)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되 보라 내가 그에게 평강을 강 같이, 그에게 열방의 영광을 넘치는 시내 같이 주리니 너희가 그 젖을 빨 것이며 너희가 옆에 안기며 그 무릎에서 놀 것이라
(사66:13) 어미가 자식을 위로함 같이 내가 너희를 위로할 것인즉 너희가 예루살렘에서 위로를 받으리니
(사66:14) 너희가 이를 보고 마음이 기뻐서 너희 뼈가 연한 풀의 무성함 같으리라 여호와의 손은 그 종들에게 나타나겠고 그의 진노는 그 원수에게 더하리라
1) 함께 기뻐하게 됨 (10)
말씀에 떠는 자들이 다 함께 기뻐하게 되는 것은 잠깐의 시련을 겪었지만 말씀대로 이루어지는 축복이 오므로 그들을 통하여 새로운 시대가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말씀에 떠는 종들을 통하여 많은 백성이 새 시대에 들어가게 될 때에 그 기쁨은 다 함께 영원히 기뻐하며 복을 누리는 것이니 이것이 즐거운 에덴 축복이라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말씀에 떨지 않는 아담 하와에게 고통을 주었지만 말씀에 떠는 사람에게는 다시 고통이 없는 기쁨의 생활이 있게 하신다.
2) 만족함이 있게 하신다 (11)
최고의 만족이라는 것은 말씀에 떠는 사람에게 있게 되는 것은 말씀대로 심판이 오고 말씀대로 축복이 오니 이 축복이라는 것은 최고에 만족을 주는 축복이다. 이날까지 저주받았던 만물은 최고에 만족을 주는 것이니 예를 든다면 젖 먹는 어린아이가 어머니 품 안에서 만족한 것같이 하나님의 영광의 풍성함을 누리게 될 것이다.
하나님의 사랑은 인생의 생각 밖에 만족을 주는 것이니, 이것을 주시고자 하는 하나님은 온전한 사람을 찾는 것이 아니고 말씀에 떠는 자라면 하나님께서 말씀대로 책임을 지시고 이루어주시는 것이다.
3) 평강을 주심 (12)
그리스도께서 만민의 죄를 위하여 저주의 십자가를 지시고 죽은 지 3일 만에 부활하셔서 사랑하는 제자를 찾아가서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하신 것은 첫째 아담이 범죄하므로 잃어버렸던 평강을 다시 주신다는 것을 뜻한 것이다.
하나님은 평강의 신이시니 당신이 가진 평강을 인생에게 주고자 하는 것이 완전한 사랑이란 것이다. 하나님께서 그 평강의 영광을 홀로 가지고 있다는 것은 사랑의 심정을 가진 하나님께서 오히려 슬퍼하시고 인생에게 그 평강을 주는 것을 기뻐하는 것이다.
4) 친히 위로하심 (13~14)
하나님께서 당신의 말씀을 떠는 마음에서 순종한 자는 친히 위로하시되 “어미가 자식을 위로함같이 내가 너를 위로할 것인즉 네 마음이 기뻐서 네 뼈가 연한 풀의 무성함 같으리라”고 하셨다. 이것은 그 몸이 늙지 않고 항상 청년같이 젊어서 영원히 있을 것을 가르쳤다. 사람의 몸이 뼈가 피곤해지고 온 몸의 피가 피곤한 것은 죗값이라고 본다. 우리 영만이 영생하는 것이 아니고 몸까지 영생하는 데는 항상 연한 풀같이 소성하는 힘이 있다는 것이다.
금일에 기독교가 불신자와 같이 그 몸이 죽는 것은 완전한 구원이 아니고 그 영을 잠시 동안 낙원에 머물러있게 하는 것뿐이고 완전한 구원이라는 것은 그 몸이 영원히 청춘의 몸으로 영생하는 것을 가르쳤다.
결 론
가장 가련한 인간은 하나님 말씀에 떨지 않는 인간이요, 가장 복되고 화려하게 되는 사람은 말씀에 떠는 자라고 볼 수 있다. 하나님께서 이사야에게 이 복음을 주신 목적은 말씀에 떠는 자에게 자손만대에 축복이 있다는 것을 가르친 것이다(사66:22~23).
71년 1월호 <설교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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