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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복음 사랑과 기쁨 - 요15:9~1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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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인생이라는 것은 사랑과 기쁨이 없이는 살 수가 없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인생을 창조하실 때에 서로 사랑하는 가운데서 극도로 기쁘게 살도록 창조하셨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사랑하시되 극도로 기뻐할 수 있는 생활에 들어가도록 목적을 두고 사랑하는 것이니 인생으로서는 하나님의 사랑을 떠나서는 아무런 열매가 없도록 하신 것이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사랑의 자체이신데 그 사랑을 사람에게 주어야 하나님도 기쁘고 받는 사람도 기쁨을 누리도록 하는 것이 하나님의 경륜이기 때문이다. 인생의 사는 가치라는 것은 하나님의 사랑을 받음으로만 가치가 있고, 하나님의 영광은 인생이 하나님의 사랑을 받음으로만 하나님은 영광이 되는 것이다.

  사랑과 기쁨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본문을 통하여 알 수 있다.



  1. 사랑 (9~10)


(요15:9) 아버지께서 나를 사랑하신 것 같이 나도 너희를 사랑하였으니 나의 사랑 안에 거하라

(요15:10) 내가 아버지의 계명을 지켜 그의 사랑 안에 거하는것 같이 너희도 내 계명을 지키면 내 사랑 안에 거하리라


  사랑이라는 것은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사랑이 아니고는 참사랑을 찾아볼 수 없는 것이다.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계통적인 사랑이라야 우리 인생에게 열매가 있게 된다.

  계통적인 사랑을 말하자면 다음과 같다.


  첫째 :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사랑하신 일,

  둘째 : 예수님께서 제자를 사랑하신 일,

  셋째 : 제자가 우리를 사랑하는 일, 이것이 계통적인 사랑이다.


  먼저,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세상 죄를 걸머지고 세상에 나게 하시고 만민의 죄를 위하여 대신 죽게 하신 것은 극히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사랑하신 일이다.

  왜냐하면 예수님이 사람의 몸을 받게 된 것이 하나님의 가장 큰 사랑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아들이 물과 피로 임한 그 몸을 하나님께로 받게 된 것은 큰 축복이라고 본다. 아무리 성자의 신이 있다 하여도 사람의 몸을 하나님께로 받지를 못하였다면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낼 수도 없고 영광을 받을 수도 없다. 왜냐하면 몸이 없이는 영광을 누릴 수가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가장 큰 축복은 영광스러운 몸을 하나님께로부터 받게 되는 일이라고 본다.

  그리고 만민의 죄를 담당할 수 있는 인격을 받게 된 일이다. 예수님의 큰 영광은 만민의 죄를 위하여 죽을 수 있는 인격을 가진 일이다. 아무리 예수님께서 영광스러운 몸을 하나님께 받았다 하여도 만민을 위하여 죽은 일이 없다면 세계 통일의 왕권을 받을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아들이 만민의 죄를 대신하여 죽는 것을 원하셨던 것이다(사53:10). 예수님께서 가신 길은 인간이 볼 때는 괴로운 길 같으나 하나님의 사랑 안으로 걸어가신 길이라고 보게 된다. 왜냐하면 아들을 통하여 영원한 나라를 이루는 일이기 때문이다.


  다음은, 예수님이 제자를 사랑한 일에 대하여 말한다.

  사람으로서 하나님을 위하여 일할 수 있는 사명을 맡게 되었다는 것은 가장 큰 사랑이다. 하나님은 예수님께 사명을 맡겨서 세세 왕권을 받게 하였고, 예수님은 제자에게 사명을 맡겨서 세세 왕권을 받게 하려는 사랑이니, 하나님께서 예수님은 양 떼를 위하여 죽게 한 것이 하나님의 사랑이요,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종들을 고난을 받게 하고 순교를 당하게 하는 것이 큰 사랑인 것이다.

  주님께서 사랑하는 종을 남보다도 고난을 더 많이 받게 하신 것은 극히 사랑하는 일이라고 본다. 썩어질 양식을 위하여 살던 사람이 예수님의 대행자로 일하게 될 때에 예수님께서 당하신 고난을 같이 받고 그 영광을 같이 받는다는 것은 사랑 중에도 큰 사랑이라고 본다.


  다음은, 제자가 형제를 사랑하는 일이다.

  형제를 깨닫게 하기 위하여 진리로 가르치고 책망을 하고 붙들어 주고 위로해주고 서로 기도로 돕는 일이니, 내가 용서를 받았으므로 남도 은혜를 받게 하고자 하는 사랑이 불타는 것이다. 그러므로 가장 큰 사랑은 형제를 위하여 목숨을 버리는 사랑이라고 본다. 사도들이 그 사명을 받아 피를 흘려 교회를 세움으로써 우리가 그들이 세운 교회에서 그들이 전한 복음 안에서 말세에 큰 축복을 받는 성도가 된 것은 무엇으로써 다 표현할 수가 없다. 누구든지 사도가 가르친 교훈 안에 그대로 거하면 사도와 같이 큰 축복을 왕권으로 받게 되는 것이다.

  우리는 언제나 순교한 종들의 사랑을 통하여 완전 역사가 변화 성도에게 오는 것은 계통적인 사랑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2. 기쁨 (11~14)


(요15:11)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이름은 내 기쁨이 너희 안에 있어 너희 기쁨을 충만하게 하려함이니라

(요15:12) 내 계명은 곧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하는 이것이니라

(요15:13) 사람이 친구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버리면 이에서 더 큰 사랑이 없나니

(요15:14) 너희가 나의 명하는대로 행하면 곧 나의 친구라


  기쁨이라는 것은 두 가지가 있다. 악한 자의 기쁨도 있고 의로운 자의 기쁨도 있으니 악한 자는 남이 망하는 것을 기뻐하고 의로운 자는 형제가 복을 받는 것을 기뻐한다. 예수님께서 죄인이 회개하고 들어오는 것을 가장 기뻐해서 이것이 나의 양식이라고 하였던 것이다(요4:34). 예수님께서는 지금도 우리가 완전해지는 것을 기뻐하시는 것이다.

  그러므로 모든 종들은 자기가 고생을 해도 형제가 복을 받는 것을 기뻐하는 것이다. 이것이 기독교의 참된 종들의 기쁨이다. 그러므로 주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이름은 내 기쁨이 너희 안에 있어서 너희 기쁨을 충만하게 하려 함이라”고 하셨다.

  기독교의 완전한 승리는 참된 기쁨을 계통적으로 가지는 데 있는 것이다. 형제가 형제를 살리기 위하여 기쁨으로 순교를 하는 일인데, 첫째는 예수님이 만민의 죄를 위하여 죽는 일을 가장 영광으로 생각하시고 기뻐하신 일이다. 둘째는 모든 사도들이 양 떼를 위하여 십자가를 증거하다가 순교하는 것을 기뻐한 일이다. 셋째는 우리가 그들의 열매로 마지막 싸움을 싸워서 승리하고 재림의 주를 맞이할 때에 모든 선지나 사도나 성도들이나 다 같이 크게 기뻐하는 일이 있을 것이다(계18:20, 19:5~8).

  세세 왕국이라는 것은 계통적인 기쁨을 받은 자들이 한데 모여서 기쁘게 영광을 누리는 세계를 말한다. 오늘날 이 계통적인 기쁨을 받은 자들이 하나같이 승리의 개가를 부르면서 재림의 주를 맞이하게 될 것이다.



  결  론


  우리가 가장 바라고 기다리는 것은 한 사랑 안에 한 기쁨을 가지고 이루어지는 왕국을 바라보고 나가는 것이다. 그러므로 계통적인 사랑과 기쁨이 있는 자라야 종말의 지상 왕국을 이루는 반열에 들 수가 있다.



71년 11월호 <설교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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