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복음 때가 올 때 영화롭게 되는 일 - 요17:1~2, 사24:13~15, 사60:5~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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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께서는 언제나 정한 때를 두고 역사하시되 인간이 볼 때는 실패 같고 부끄러운 일, 수치스러운 일, 괴로운 일, 모든 난관을 당하게 하고 거기서 영화롭게 하는 일이 때가 올 때에 영화롭게 되는 일이다. 그리스도께서 영화롭게 되는 일은 많은 대중이 따라오고 환영할 때가 아니고 인간 죄를 짊어진 몸으로 겟세마네 동산과 골고다를 거칠 때가 영화롭게 되는 일이라는 것을 알 자는 전혀 없었다.
이제 때가 올 때에 영화롭게 되는 일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시기를 분별해서 알 수 있다.
1. 그리스도가 영화롭게 되는 정한 때 (요17:1~2)
(요17:1) 예수께서 이 말씀을 하시고 눈을 들어 하늘을 우러러 가라사대 아버지여 때가 이르렀사오니 아들을 영화롭게 하사 아들로 아버지를 영화롭게 하게 하옵소서
(요17:2) 아버지께서 아들에게 주신 모든 자에게 영생을 주게 하시려고 만민을 다스리는 권세를 아들에게 주셨음이로소이다
하나님께서 모든 선지를 통하여 언약을 세운 말씀은 정한 때에 가서야 이루어지는 것이니 그때의 비밀을 아는 자는 심히 적었다고 보게 된다. 많은 유대인이 메시야가 오기를 기다리고 있었으나 메시야가 와서 만민의 죄를 짊어지고 십자가에 죽을 그때에 비밀을 아는 자는 없었던 것이다. 유대인들은 그리스도께서 나귀를 타고 예루살렘으로 올라갈 때에 ‘호산나’를 부르며 종려 가지를 들고 옷을 벗어 길에 깔고 대환영을 했던 것이다. 그러나 십자가에 못 박힐 때에 가서는 한 사람도 ‘내 죄를 위하여 고난을 받으시나이까’ 하는 사람은 하나도 없고 다 배척을 하되, 세 가지 사람이 나타났다.
예수를 못 박아 죽이려던 원수들과 대중은 합세하여 자기네가 큰 승리를 본 듯이 떠들며 예수님을 비소하게 되었던 것이다. 죽기로 결심하고 따라가던 베드로를 비롯하여 모든 제자는 다 도망을 가고 말았던 것이다. 또는 십자가 앞에서 쳐다보고 울고 있는 마리아와 사도 요한도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이때가 예수님이 영화롭게 되는 시간인 줄 모르고 한편은 기뻐하고, 한편은 낙망을 하고, 몇 사람은 슬피 울면서 주님을 바라보고 있었다.
이렇게 될 때를 내다본 주님께서 사랑하는 제자를 향하여 “너희들은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겼노라” 하시면서 눈을 들어 하늘을 우러러보고 가라사대 “아버지여 때가 이르렀사오니 아들을 영화롭게 하사 아들로 아버지를 영화롭게 하옵소서” 하는 기도를 하게 되었다. 이 영화롭게 되는 것은 주님만이 아실 일이요, 어리석은 인간들은 다 모를 일이다.
인간이 볼 때에 나사렛 예수는 세상에 왔다가 비참한 죽음을 하는 그 광경을 볼 때에 그 누가 영화롭게 되는 일이라고 알 자가 있었을까. 의기가 양양한 대제사장과 모든 무리들은 자기네가 큰 승리를 본 듯이 떠들어댔다. 인간이 볼 때는 그들이 옳은 것 같고 예수님은 저주를 받은 것 같으나 하나님이 볼 때는 가장 영화롭고도 의로운 일인 동시에 대승리를 보는 때라고 보게 된다. 우리의 영화라는 것은 대중이 알아주는 일보다도 하나님께서 인정해주는 일일 것이니 오늘의 기독 신자들이 참된 영화라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지 못하는 중에서 하나님의 영화보다도 인간의 영화를 바라볼 때에 큰 부패를 가져온다.
그리스도 한 분이 십자가에 죽으므로 율법의 시대는 끝이 나고 은혜 시대가 돌아오는 문이 열려지는 때였다. 하나님의 아들 한 분이 십자가에 죽으므로 세계 인류가 다 영생할 수 있는 영생의 길이 열렸다는 것이 얼마나 영화로운 일인가! 모든 대중은 참된 영화를 부끄럽게 알고 임시로 그때그때에 자기를 영화롭게 하려는 생각은 멸망을 자취하는 어리석은 행동이 될 것이다(계18:7).
2. 여호와를 영화롭게 하는 정한 때 (사24:13~15)
(사24:13) 세계 민족 중에 이러한 일이 있으리니 곧 감람나무를 흔듬 같고 포도를 거둔 후에 그 남은 것을 주움 같을 것이니라
(사24:14) 무리가 소리를 높여 부를 것이며 여호와의 위엄을 인하여 바다에서부터 크게 외치리니
(사24:15) 그러므로 너희가 동방에서 여호와를 영화롭게 하며 바다 모든 섬에서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영화롭게 할 것이라
모든 인간들은 지금 무신론 사상에 속고 있고 심지어 하나님이 죽었다는 신학설까지 나오는 이때에 하나님의 진노는 반드시 올 것이다. 만일 이때에 하나님이 잠잠하고 만다면 그야말로 무신론의 사상이 승리할 것이고 인본주의 사상이 복된 자라고 볼 것이다. 그러므로 이사야 선지는 24:1 이하에 하나님께서 땅을 공허하게 하고 뒤집어엎어서 일반이 되게 할 때에 땅은 완전히 공허하게 되고 세계 인류는 불타서 남은 자가 적게 될 것은 그들이 여호와의 말씀인 영원한 언약을 파하였음이라고 했다.
세상에 인류 전멸이라는 무서운 환난 재앙이 올 때에 동방 땅끝에서부터 하나님을 영화롭게 한다고 했으니 어떻게 하여서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게 된다는 것이 이사야 24장~28장까지 기록되어 있다. 인간 죄악을 짊어진 예수님이 영화롭게 될 때는 율법 시대가 끝이 나고 은혜 시대가 올 때요, 은혜 시대가 끝이 나고 무서운 환난 재앙이 옴으로써 세계 인류가 전멸되고 남은 자로 새 시대를 이룰 때는 하나님의 이름이 영화롭게 될 때라고 했다. 왜냐하면 십자가는 새 언약의 피로 구원을 완성한 것이요, 심판과 새 시대는 여호와 새 일을 행함으로써 이루어지는 것이니 새 일을 행하시는 하나님의 이름이 영화롭게 될 것이다(사43:19).
이제 온 세계가 전멸되는 환난 재앙이 올 때에 누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느냐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성서로 증명한다.
첫째 : 끝까지 기다리고 있던 자이다. (사25:9)
하나님께서 여러 가지 시련을 준 것은 끝까지 기다리고 있는 자를 통하여 당신의 영광을 나타내며 성산의 축복을 받게 하는 것이다.
둘째 : 해산의 수고를 다하던 자이다. (사26:16~19)
언제나 해산의 수고를 다하던 자들이 하나님을 영화롭게 했다는 것은 역사가 증명하는 사실이다. 그러므로 주님 다시 올 때도 해산의 수고를 다하던 자들이 1차 부활에 참여하는 동시에 여호와를 찬송하게 될 것이다.
3. 동방 사람이 영화롭게 되는 정한 때 (사60:5~9)
(사60:5) 그 때에 네가 보고 희색을 발하며 네 마음이 놀라고 또 화창하리니 이는 바다의 풍부가 네게로 돌아오며 열방의 재물이 네게로 옴이라
(사60:6) 허다한 약대, 미디안과 에바의 젊은 약대가 네 가운데 편만할 것이며 스바의 사람들은 다 금과 유향을 가지고 와서 여호와의 찬송을 전파할 것이며
(사60:7) 게달의 양 무리는 다 네게로 모여지고 느바욧의 수양은 네게 공급되고 내 단에 올라 기꺼이 받음이 되리니 내가 내 영광의 집을 영화롭게 하리라
(사60:8) 저 구름 같이, 비둘기가 그 보금자리로 날아 오는 것 같이 날아 오는 자들이 누구뇨
(사60:9) 곧 섬들이 나를 앙망하고 다시스의 배들이 먼저 이르되 원방에서 네 자손과 그 은금을 아울러 싣고 와서 네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에 드리려 하며 이스라엘의 거룩한 자에게 드리려 하는 자들이라 이는 내가 너를 영화롭게 하였음이니라
인생 중에 가장 영화롭게 되는 사람은 동방 사람이라는 것을 이사야 60장은 가르쳤다. 이것은 사59:19~21과 같이 되기 때문이니 동방 사람에게 신이 임하고 입에 말씀이 임함으로써 이것으로 영원한 왕국이 이루어질 오메가 역사가 되기 때문이다. 동방에 임한 말씀의 빛이 세계를 밝힐 때에 열방 재물이 동방으로 들어오는 동시에 지상 축복의 새로운 땅의 주인공이 되기 때문이다. 이것은 동방 사람을 통하여 새로운 시대가 이루어지는 역사가 오기 때문이다.
인간에게 버림을 당하고 미움을 당하고 심지어 지나가는 자가 없었으나 그가 영영한 아름다움과 세세에 기쁨이 되게 하시는 것은 열방의 모든 통치권을 가지게 되기 때문이다(사60:12~16, 사62:1~3). 이것이 하나님의 대사업이 되는 것이다. 간교한 옛 뱀을 만들어 천하를 꾀어보는 것은 미혹을 받지 않고 이긴 자로 왕국을 이루기 위한 목적이다(계12:7~11).
결 론
영화롭게 되는 일은 하나님의 말씀이 이루어짐으로만 되는 것이니 그리스도를 통하여 세계 인류의 죄를 사하는 진리가 말씀대로 이루어지므로 그리스도께서 영화롭게 되었고, 하나님께서 새 일을 행하시겠다는 말씀이 이루어지므로 하나님 이름이 영화롭게 될 것이고, 새 일의 진리를 완전히 하나님께 받아서 세계에 전파하는 자가 될 때에 영화롭게 되는 일이 있을 것을 때가 될 때에 영화롭게 되는 일이라는 것이다.
70년 12월호 <설교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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