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성된 일 같으나 헛된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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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많은 사람들이 충성을 다하여 일을 하는 사람을 좋아하는 것은 사실이다. 자기가 충성을 못해도 남이 충성되지 못하면 오히려 싫어하는 것은 자기가 이익을 보려는 마음을 가지고 남이 내게 충성을 다해달라는 것이다.
어떤 공장에 사장이 있다면 그 사장은 공장 안의 직공들이 충성을 다해서 일해주기를 바랄 것이다. 왜냐하면 그렇게 해야만 자기 공장이 잘되겠기 때문이다. 어느 나라의 대통령이든지 자기를 위하여 충성을 다해줄 사람을 찾고 있을 것이다. 이것은 자기의 정권을 좀 더 확장시켜 자기의 명예를 높이기 위한 목적일 것이다. 위정자가 자기에게 충성을 다하는 사람을 요구하는 것은 정치적인 야욕에 속한 것이며, 어떤 종교 지도자가 자기를 충성되이 받들라고 한다면 이것도 교권의 야욕이 될 것이다.
그러므로 ‘충성된 일 같으나 헛된 일’이 무엇이냐는 것을 다음과 같이 말한다.
1) 비진리에 대한 충성이다.
어떤 사람이 종교인으로서 아무리 충성을 다했다 하여도 비진리적인 종교를 위하여 충성을 했다는 이것은 허사가 될 것이다. 왜냐하면 비진리를 위하여 수고했으므로 죄가 더 크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충성이라는 것은 합법적인 진리를 위하여 충성을 다하는 것 외에는 다 허사가 되고 말 것이다.
하나님께서 진리대로 판단을 나릴 때에 비진리를 위하여 충성한 자는 그만큼 화를 받게 될 것이고 참된 하나님의 진리를 위하여 충성을 다한 자는 그만큼 큰 축복을 받되 화를 받는 일이나 축복을 받는 일이 다 갑절이나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비진리를 위하여 충성을 다했다는 것은 허사인 동시에 후회막심이라는 슬픔을 가져오는 일이 진노의 날에 있게 될 것이다.
2) 불의한 일에 대한 충성이다.
어떤 사람이 불의한 정치인이나 불의한 일을 꾸며내는 지도자에게 충성을 다한다면 불의의 도구가 된 것이니 이러한 불의한 자가 망할 때에 같이 망하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계18:4을 보면 “내 백성아, 거기서 나와 그 죄에 참여하지 말고 그의 받을 재앙을 받지 말라”고 했던 것이다. 이것은 심판기에는 아무리 택한 백성이라도 불의한 일에 동참하면 망한다는 것이다.
언제나 불의한 자라는 것은 하나님께 충성을 다하는 것을 싫어하고 자기가 하는 일에 충성을 다해달라는 것이 불의한 자라는 것이다. 아무리 충성을 다했다 하여도 불의한 자가 시키는 일에 충성을 했다는 것은 죄 중에 제일 큰 죄가 되는 것이다. 우리 인간이라는 것은 하나님을 섬기는 일 외에 딴것을 섬기는 일은 전부가 불의가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섬기는 일 외에 다른 것을 섬기기 위하여 일했다는 것은 전부가 허사가 되고 마는 것이다.
3) 자기의 영리에 대한 충성이다.
모든 사람들은 자기에게 영리가 있는 일이라면 시간을 아끼지 않고 심지어 생명을 바쳐가면서라도 충성되이 그 일을 해보려는 것이 있다. 그러나 이것은 허사가 되고 말 것이다.
그러므로 물질이 죄가 된다는 것보다도 물질을 자기를 위하여 쓰고 하나님을 위하여 쓰지 않는다면 그 물질이 쓰여지는 일이 불의한 일이므로 그 물질을 위하여 모든 일을 충성되이 했다 하여도 이것은 허사가 되고 만다는 것이다.
그러면 ‘충성을 다해야 될 일’을 알아보자.
1) 유일신 종교 신앙 양심에서 유일의 진리를 위하여 충성을 다한다면 스스로 계신 하나님께서 창조한 대자연을 통하여 오는 모든 축복은 전부 하나님의 의를 위한 일에 열매가 될 것이다. 왜냐하면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의를 위하여 창조된 물질이니 무슨 일을 당하든지 그 목적이 의를 위한 것이라면 다 하나님의 일이 되기 때문이다.
2) 참된 사랑을 받은 양심에서 그 사랑을 남에게 주고자 하는 일이다. 참된 사랑이라는 것은 하나님께서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인간의 죄를 위하여 대신 죽게 했다는 사랑이다. 그러므로 이 사랑 속에서 속죄를 받은 사람이 그 사랑에 감격하여 자기가 용서를 받은 것같이 다른 사람도 용서받기를 원하고 자기가 구원을 받은 것같이 다른 사람도 구원받기를 원하는 사랑에서 충성을 다하는 일은 전부가 세세 왕권의 축복으로 이루어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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