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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소식을 예루살렘에 전하는 자여 너는 힘써 소리를 높이라

7. 겸손한 왕 - 마21:1~1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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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21:1) 저희가 예루살렘에 가까이 와서 감람산 벳바게에 이르렀을 때에 예수께서 두 제자를 보내시며

(마21:2) 이르시되 너희 맞은편 마을로 가라 곧 매인 나귀와 나귀 새끼가 함께 있는 것을 보리니 풀어 내게로 끌고 오너라

(마21:3) 만일 누가 무슨 말을 하거든 주가 쓰시겠다 하라 그리하면 즉시 보내리라 하시니

(마21:4) 이는 선지자로 하신 말씀을 이루려 하심이라 일렀으되

(마21:5) 시온 딸에게 이르기를 네 왕이 네게 임하나니 그는 겸손하여 나귀, 곧 멍에 메는 짐승의 새끼를 탔도다 하라 하였느니라

(마21:6) 제자들이 가서 예수의 명하신대로 하여

(마21:7) 나귀와 나귀 새끼를 끌고 와서 자기들의 겉옷을 그 위에 얹으매 예수께서 그 위에 타시니

(마21:8) 무리의 대부분은 그 겉옷을 길에 펴며 다른이는 나무 가지를 베어 길에 펴고

(마21:9) 앞에서 가고 뒤에서 따르는 무리가 소리질러 가로되 호산나 다윗의 자손이여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이여 가장 높은 곳에서 호산나 하더라

(마21:10) 예수께서 예루살렘에 들어가시니 온 성이 소동하여 가로되 이는 누구뇨 하거늘

(마21:11) 무리가 가로되 갈릴리 나사렛에서 나온 선지자 예수라 하니라



  서  론


  세계를 통일할 왕은 겸손한 왕이라는 것을 하나님은 스가랴 선지를 통하여 말씀했던 것이다. 세계를 통일할 수 있는 인격은 초인간적인 왕의 겸손이 없다면 벌레 같은 인간과는 하등 관계가 없기 때문이다. 그 왕은 자진적으로 겸손을 택했던 것이다.



  1. 출생의 겸손 (눅2:6~7)


(눅2:6) 거기 있을 그 때에 해산할 날이 차서

(눅2:7) 맏아들을 낳아 강보로 싸서 구유에 뉘었으니 이는 사관에 있을 곳이 없음이러라


  만왕의 왕이 말구유에 탄생한다는 것은 인간으로서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일이다. 인류 역사상 이러한 겸손은 볼 수 없는 것이다. 만일 이러한 출생의 겸손이 아니라면 그는 세계 인류의 왕이 될 수 없다. 왜냐하면 이것은 극도로 낮은 인간을 극도로 높은 데로 올리자는 목적의 탄생이기 때문이다.



  2. 장성의 겸손 (눅2:51)


(눅2:51) 예수께서 한가지로 내려가사 나사렛에 이르러 순종하여 받드시더라 그 모친은 이 모든 말을 마음에 두니라


  그리스도는 어떤 학교나 훌륭한 선생의 교훈도 없는 빈촌인 나사렛 동리에서 목수의 생활을 하는 가정을 택하여 순종하며 받들어 봉사하는 일로 자라났던 것이다. 이것은 완전한 신성을 가지신 인격이니 고등 학문도 고등 교육도 그에게는 필요가 없고, 오직 어려서부터 노동 봉사를 하는 것으로 전력을 다했던 것이다. 



  3. 사업의 겸손 (눅5:31~32)


(눅5:31)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건강한 자에게는 의원이 쓸데 없고 병든 자에게라야 쓸데 있나니

(눅5:32) 내가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불러 회개시키러 왔노라


  주님께서 죄인을 부른다는 것이 그의 목적한 사업이니 그는 자기가 옳다는 바리새교인과는 하등의 관계가 없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주님께서 “나는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라”고 말씀하신 것은 의인이 세상에 있다는 것이 아니고 스스로 의인이라는 교만을 가진 자는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제자를 택해도 낮은 자를 택했고, 주무실 때에도 죄인의 집을 택했고, 음식을 잡수셔도 죄인의 집을 택했던 것이다.



  4. 기도의 겸손 (눅22:42)


(눅22:42) 가라사대 아버지여 만일 아버지의 뜻이어든 이 잔을 내게서 옮기시옵소서 그러나 내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되기를 원하나이다 하시니


  주님은 겟세마네 기도 시에 자신이 있다는 기도는 없었고 자신이 십자가를 원치 않는다는 뜻을 표시한 것은 완전하신 분은 아버지밖에 없다는 것을 표시한 것이, 내 뜻대로 마옵시고 아버지 뜻대로 하라는 기도를 드렸던 것이다. 만일 주님도 자신이 있다는 태도를 가졌다면 이것은 완전한 사람이 아니다. 사람으로서는 십자가 지기를 좋아하는 사람은 없다는 표시를 주기 위한 것이다. 



  5. 죽음의 겸손 (눅23:46)


(눅23:46) 예수께서 큰 소리로 불러 가라사대 아버지여 내 영혼을 아버지 손에 부탁하나이다 하고 이 말씀을 하신 후 운명하시다


  주님은 임종 시에 일언반구의 불평 없는 태도에서 아버지께 영혼을 부탁했던 것이다. 죄 없이 고통을 당하는 예수님의 심정은 임종 시까지 겸손한 태도로 죄인을 불쌍히 보는 태도, 어머니를 동정하는 태도, 하나님을 경외하는 태도, 말씀에 순종하는 태도를 가지고 운명을 하셨다.



  6. 부활의 겸손 (막16:7)


(막16:7) 가서 그의 제자들과 베드로에게 이르기를 예수께서 너희보다 먼저 갈릴리로 가시나니 전에 너희에게 말씀하신대로 너희가 거기서 뵈오리라 하라 하는지라


  부활하신 주님께서 하늘의 형체를 입으시고도 일곱 귀신이 들렸던 막달라 마리아에게 먼저 그 형체를 보이신 것은 겸손의 주님으로 보이신 것이다. 주님은 외모를 보지 않는 동시에 자체를 겸손한 자에게 지금도 나타내시는 것이다. 



  결  론


  우리는 주님의 출생으로부터 부활 승천까지 걸어가신 겸손의 길을 가야만 할 것이니, 이 길만이 왕권을 소유하는 정로가 될 것이다. 다시 말하면 왕권을 가질 자라도 이 길을 가지 않고는 동등한 왕권의 자리를 얻지 못할 것이다. 겸손은 최대의 세력을 가져오는 과정이라고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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