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 예수님의 창세전 영화와 말세 영화 - 요17: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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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 론
하나님의 영화라는 것은 스스로 있는 창세전의 영화도 있고, 그리스도를 세상에 보내서 이루어지는 영화도 있으니 이것을 말하자면 다음과 같이 말할 수 있는 것이다.
1. 창세전의 영화 (요17:5)
(요17:5) 아버지여 창세 전에 내가 아버지와 함께 가졌던 영화로써 지금도 아버지와 함께 나를 영화롭게 하옵소서
성경에 창세기 1장의 태초라는 말과 요한복음 1장의 태초라는 말은 같은 태초가 아니다. 창세기 1장의 태초는 창세전의 영원한 태초가 아니다. 그러면 창세전의 영화라는 것은 어떠한 영화라는 것을 알아야 할 것이다.
이 영화는 스스로 있는 영화이다. 하나님께서 어떤 피조물을 통하여 받는 영화도 아니요 피조물에게 주는 영화도 아닐 것이다. 신의 자체는 거룩이요, 사랑이요, 영생이요, 평화요, 미이시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 자체는 미의 하나님이니 그 미라는 자체가 피조물이 아니다. 신의 본체에 속한 것은 전부가 스스로 있는 것이라는 것을 알아야 할 것이다.
2. 말세에 나타난 영화 (요12:28, 17:1)
(요12:28) 아버지여 아버지의 이름을 영광스럽게 하옵소서 하시니 이에 하늘에서 소리가 나서 가로되 내가 이미 영광스럽게 하였고 또 다시 영광스럽게 하리라 하신대
(요17:1) 예수께서 이 말씀을 하시고 눈을 들어 하늘을 우러러 가라사대 아버지여 때가 이르렀사오니 아들을 영화롭게 하사 아들로 아버지를 영화롭게 하게 하옵소서
예수님은 십자가를 앞에 놓고 손을 들고 하늘을 우러러보면서 기도 중에 한 말씀이 “나를 영화롭게 하사 아버지를 영화롭게 하옵소서” 했던 것이다. 그러면 창세전의 아들과 말세에 나타난 아들과는 인격적으로 다른 것이다. 다시 말하면 전에는 신성뿐인 아들이나, 말세에 나타난 예수는 신성과 인성을 가진 아들이니 사람된 자격으로서 받는 영화를 말한 것이다. 그러면 사람된 자격의 영화라는 것은 만왕의 왕이 될 수 있는 영화이다. 십자가의 죽으심은, 만민을 살릴 수 있는 인격은 신성만이 아니고 인성을 가진 인격이다.
그러므로 만물을 창조한 영화보다는 더 놀라운 영화는 십자가의 승리로 이루어진 영화일 것이다. 왜냐하면 창세전의 영화가 신에게 만족을 준 영화는 아니었고 인류를 창조하여 피조물된 인간을 통하여서 완전한 천국을 이루어 당신의 영광을 혼자 누리는 것보다도 만민이 같이 누리게 되는 것을 원하는 사랑의 심정이 삼위일체 하나님께 있기 때문이다. 이 영화는 무형적인 영화보다도 실체적인 영화로 이루어지는 일이기 때문이다. 만일 사람이 무형적인 신으로서만이 이루어지는 영화라면 육을 쓴 실체에 영화를 받아야 될 사람은 만족이 있을 수가 없을 것이다.
이러므로 예수님이 사람된 자격으로서 영화를 얻을 것은 땅에 사는 인간들에게 큰 소망이 되는 동시에 세세의 왕국의 기업을 이루는 것이다.
결 론
하나님은 완전한 사랑을 가진 것은 자기가 가지고 있는 영화로운 것을 피조물된 사람이나 만물까지도 같이 누려보자는 것이 광대한 하나님의 완전한 사랑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말세에 나타난 그리스도의 영화만이 인간의 최고 행복을 이루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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